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포켓몬 고(go)’. 증강현실기능을 이용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스마트폰 화면 속에 나타난 포켓몬스터를 잡는 단순한 게임이다. 그동안 개발된 게임들은 일정한 틀 안에서 즐겨야 했지만 포켓몬 고는 밖으로 나가야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포켓몬고 열풍] ‘포켓몬고’는 잘못 없다

◆게임이 사회현상으로 번져
사람들이 움직이면 경제효과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공식 서비스지역이 아님에도 강원도 속초지역에서 포켓몬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속초시장이 직접 나서 포켓몬 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이채롭다. 휴가철에 ‘포켓몬 성지’로 떠오르며 관련 여행상품까지 출시돼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카메라 기능이 활성화되고 화면도 계속 켜져있으니 배터리소모가 많아 보조배터리나 충전사업도 갑자기 관심을 받는다. ‘게임 따위’라고 무시하기엔 파급효과가 큰 사회현상이 됐다.

적당히 즐기면 좋겠지만 게임 특성상 몰입하는 사람들이 문제로 지적됐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헤매다가 주변을 살피지 못해 사고가 잇따랐고 국내외에서 안전성(?) 논란도 일었다. 특히 영문을 모르는 이가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딱 좋다. 마치 ‘스마트폰 좀비’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만우절 이벤트가 이슈메이커로

포켓몬 고 아이디어는 2014년 구글의 ‘포켓몬 챌린지’ 만우절 이벤트에서 시작됐다. 지도 애플리케이션 구글맵스에서 전세계 명소를 검색해 돌아다니며 주변에 등장하는 포켓몬을 잡는 방식으로, 지금의 포켓몬 고와 흡사하다. ‘포켓몬 고’를 만든 존 한케 나이앤틱 대표가 구글 지도팀의 상품기획부문 부사장으로 재임하던 때였다.

만우절 이벤트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본 그는 포켓몬컴퍼니와 함께 아이템을 기획했다. 포켓몬컴퍼니는 1990년대 PC게임 ‘포켓몬스터’를 개발한 게임프릭과 닌텐도가 공동출자해 만든 기업이다. 이벤트를 진행한 지 2년여가 흐른 지난 7월6일 출시된 ‘포켓몬 고’ 게임은 날마다 이슈를 쏟아내는 ‘이슈메이커’로 떠올랐다.


포켓몬 고를 기획한 닌텐도는 한때 게임업계를 주름잡던 업체다. 모바일게임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다가 이번 포켓몬 고 하나로 게임업계 최강자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포켓몬 고 열풍 덕에 주가가 65% 이상 치솟았고 시가총액도 15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포켓몬 고 없는 이유 넷

올 초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은 세기의 관심사로 꼽힌다. 이후 우리나라는 한국형 알파고를 개발해야 한다며 설레발을 쳤다. 이번엔 포켓몬 고가 대히트를 치자 기술이 있음에도 한국형 포켓몬 고가 왜 없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엔 왜 포켓몬 고가 없을까.

▲인식 1: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
게임업계에선 우리 국민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한몫한다고 지적한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란 편견과 특정 장르에 집중투자한 점이 게임산업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큰 시장임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낮다. 유통으로선 ‘빅브라더’지만 개발에선 ‘베이비’다.

▲인식 2: ‘오타쿠’는 이상한 사람들
‘덕후’를 배척하는 문화도 문제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라는 말을 우리 식으로 바꿔 부르는 단어다. 오타쿠는 한가지 일에만 병적으로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대체로 특정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선 ‘철이 덜 든 사람’이나 ‘이상한 사람’쯤으로 치부되지만 해외에서는 ‘전문가’며 ‘큰 손’으로 인식된다. 가령 캐릭터 오타쿠가 많다면 관련상품을 사모으게 될 것이고 오타쿠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릴 적 취미를 즐기고 싶은 ‘키덜트’들의 지갑도 열릴 것이다. 캐릭터산업에 생기가 돌 수밖에 없다.

▲인식 3: 캐릭터 스토리라인이 부족하다
포켓몬 고의 인기비결로 많은 전문가가 ‘스토리라인’을 꼽는다. 어린 시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접했던 캐릭터들이 사용자와 함께 커왔고 마치 주인공처럼 포켓몬을 모으러 돌아다니는 방식이 공감을 샀다는 것.

하지만 일부에선 캐릭터에 스토리라인이 없다고 성공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일례로 일본 산리오사의 헬로키티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캐릭터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게임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긴 시간 사랑받는 것은 끊임없이 변신한 덕분이다. 귀엽고 단순한 캐릭터를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고 생활 속에서 함께하다 보니 계절 등 테마의 변화가 스토리라인을 대신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라인프렌즈와 카카오프렌즈가 비슷한 형태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KT가 수년전에 선보인 ‘올레 캐치캐치’ 게임도 덩달아 화제다. 포켓몬 고와 똑같이 증강현실을 이용해 몬스터를 잡는 방식이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해 조용히 사라졌다. 게임업계에선 ‘캐릭터’의 힘이 약한 탓으로 보지만 마케팅 전문가들은 “만약 요금할인이나 무료 통화시간 제공 등의 실질적인 혜택이 뒷받침됐다면 오히려 ‘올레몬 고’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평했다. 캐릭터의 거창한 스토리라인이 없어도 ‘스토리텔링’을 입힌 마케팅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인식 4: 무조건 새 기술이어야 해
좋은 특허가 많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시스템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미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증강현실 관련 특허출원 건수가 급격히 늘었음에도 정작 수익을 얻는 경우는 12.4%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이준석 한국발명진흥회 부회장은 “특허는 방어적 측면에서 출원하는 경우도 있다”며 “필요한 기술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고 브랜드 특허전문 조휘건 변리사는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중 특허에는 관심이 많지만 브랜드화나 사업화 가능성 등은 등한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미 개발된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업화 가능성을 검토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형 포켓몬 고, 기본부터 다시

게임이나 마케팅전문가 중 일부는 한국판 포켓몬 고의 주인공이 굳이 우리나라 캐릭터인 뽀로로나 둘리, 카봇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앵그리버드나 스머프처럼 이미 잘 알려진 해외 유명캐릭터를 활용해 우리가 가진 기술과 접목시키는 방법도 있다는 것. 아류가 되기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