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설 직전 취업에 성공한 새내기 직장인 정모씨(31). 그는 취직 후 명절날 친척에게 들은 얘기가 아직도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제 취업도 했고 장가만 가면 되겠네. 장하다 장해.” 정씨도 올해 추석쯤엔 새 신부를 친척들 앞에 선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정씨는 요즘 대한민국에 서 결혼이 취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취업 후 갚아야 할 학자금대출은 정 씨의 연애세포를 소멸시켰고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앞에 결혼은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이토록 희망 없는 시대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취업’에 성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청년들은 이제 ‘결혼’ 앞에서 미래를 포기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고 월급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비용 부담이 늘면서 결혼율은 감소하고 1인가구가 증가하는 사회구조로 변화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집에서 오순도순 평범하게 사는 것마저 ‘사치’가 돼버린 사회가 온 것이다.
![]() |
◆결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돈’
청년들 사이에 ‘3포세대’란 신조어가 있다. 연애·결혼·출산 세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은 포기하는 분야가 늘면서 ‘7포세대’, ‘N포세대’란 표현으로 변화했다. 인간 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을 포기한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부정수 ‘N’ 이 붙은 것이다.
청년들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는 사회구조적인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돈’이다. 경제적인 여건 앞에서 청년들은 가정을 꾸리는 소박한 꿈마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청년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망설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머니S>와 인크루트가 공동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이유로 ‘경제적 여건’(790명·68%)이 가장 많았다.
이어 ‘가정과 직장생활 병행의 어려움’(160명·14%), ‘승진이나 이직 등 기반을 높이기 위해’(95명·8%), ‘구속이 싫어서’(71명·6%)가 뒤를 이었다. 사실상 1~3위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청년들에게 취업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있어도 미래를 보장하는 희망은 되지 못한단 얘기다.
결혼시기도 늦어졌다. 설문조사 결과 청년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시기는 ‘30대’(625명 ·54%)가 가장 많았다. 이어 ‘나이는 관계없다’(209명·18%)가 2위, ‘20대’(172명·15%)가 3위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결혼이 불필요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11%(132명)나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통계조사는 결혼연령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의 ‘2015년 혼인·이혼 통계’ 에 따르면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2.6세, 여성 30.0세로 조사됐다. 1990년대 남성과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8세, 25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평균 5년 정도가 늦어진 셈이다.
눈에 띄는 항목은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다. 여성 초혼연령이 사상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한 것. 특히 2014년 대비 여성의 초혼시기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각각 2.2%, 1.7% 감소한 반면 30대 후반은 5.7% 증가했다. 30대 후반의 미혼여성을 노처녀라고 부르기 민망한 시대가 된 것이다.
자녀계획도 달라졌다. 과거 부부사랑의 결실로 여겨지던 출산은 이제 모든 부부가 꿈꾸는 행복이 아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녀계획을 묻자 ‘2명을 낳겠다’는 대답이 541명으로 절반(47%)에 육박했으나 ‘낳고 싶지 않다’는 답변도 271명으로 2위(24%)를 차지했다. ‘1명’이 159명(14%), ‘3명’이 151명(13%)으로 뒤를 이었다.
![]() |
◆‘현실적 청년문제’ 접근하는 대안 필요
결혼과 출산보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주거’의 벽을 넘는 일이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은 많은 금액을 대출받고 빚에 허덕이는 구조적 악순환을 겪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임신·출산을 독려하고 자녀 양육비 경감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는 임신·출산 시 진료비 경감, 남성의 육아휴직,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 다양한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실효성에는 아직 의문부호가 붙는다.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행복주택의 경우 많은 신청자가 몰렸지만 현실적으로 높은 보증금과 임대료가 논란이 됐다. 기본계획에 포함된 ‘포용적 가족관 확산’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 실천 정착’ 등은 구체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정부가 내놓은 주거정책은 과거 임대정책을 반복하거나 높은 임대료의 민간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내용일 뿐”이라며 “이미 실패한 정책들을 다시 내놔봤자 청년 주거의 근본 적인 문제를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년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재 직면한 현실이 그것들을 포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청년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청년들이 느끼는 현실적 문제와의 괴리감을 좀 더 좁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년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교육과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그들에게 그동안의 풍요로움에 보답이라도 하라는 듯 ‘시련’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진 청년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지 않도록 정부의 현명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