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에 ‘역전세난’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미친 전세’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침에 눈뜨면 전셋값이 또 오른 탓에 이제는 역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셋값을 감당 못해 월세를 택하거나 대출을 더 받아서라도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전세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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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DB |
◆전세금 못 구하는 집주인… 주택시장 ‘뇌관’
“한달 수입에 비하면 월세 50만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굳이 1억원 넘는 보증금을 맡기고 싶지 않아요. 집주인이 대출금을 못 갚으면 집이 경매처분될지도 모르는데 월세를 내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서울 용산의 빌라에 사는 세입자 양모씨(33)는 보증금 34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내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집의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3000만원밖에 안 나는데 큰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게 낫다”며 “나중에 내집을 사기 전까진 월세를 내고 보증금은 정부가 보호하는 최우선 변제금만큼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고유의 주택임대제도인 전세의 매력이 떨어졌다. 과거 전세는 집 없는 서민들이 낮은 임차료를 내고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셋값 폭등이다. 저금리정책으로 보증금을 예금해도 이자수익이 나지 않자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올리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은 집값과의 차이가 10~20%에 불과하다.
전세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최근에는 역전세난이 기승을 부린다. 전셋값이 비싸 집을 못 찾는 전세난도 문제지만 집주인이 세입자를 못 구하는 역전세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추가 대출을 받거나 보증금을 연체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현상은 전셋값에 영향을 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강남3구의 전셋값 평균은 한달 사이 0.07% 떨어졌다. KB국민은행은 지난 6월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7년6개월 만에 하락했다고 밝혔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09년 2월 38.3%를 기록한 후 지난 6월 75.1%까지 오르며 단 한번도 내려간 적이 없었다.
아파트 공급량 증가도 전셋값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강남과 인접한 경기도 하남과 위례 등 신도시에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며 이주가 빨라지자 서울 전셋값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하남과 위례의 입주 쇼크를 받아 서울 전셋값이 내렸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전세종말이 오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런 역전세난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는 “집값이 오르니 무리하게 대출받아 아파트를 산 후 세입자에게 보증금 인상을 요구한 집주인이 많았는데 역전세난으로 인해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워지고 집주인은 연체의 위험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2008년 서울 송파구 일대가 역전세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재건축아파트에 1만5000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인근의 한 아파트 전셋값이 1년 만에 3억원 후반대에서 2억원 초반대로 뚝 떨어졌다. 당시 전셋집이 남아돌고 전셋값이 급락하자 집주인들이 대출받아 보증금을 돌려주는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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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신도시. /사진=머니위크DB |
◆‘한국형 임대주택’ 전세, 대체 방법은?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올해 상반기 주택 전월세거래 중 월세는 46%를 차지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월세 비중이 13.5%포인트 늘었다. 정부가 2011년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를 집계한 이래 월세 비중이 절반에 이른 것은 처음이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5년 만에 17.4%에서 38.3%로 2.2배 급증했다.
전세가 줄고 월세가 빠르게 늘었지만 주택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전세를 대체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아파트의 월세금액은 평균 62만6000원이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의 경우 각각 48만3000원, 37만9000원이다. 전체 세입자 가구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18.4%지만 소득하위 20%의 경우 30.4%다.
따라서 전세제도를 대체하려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내는 ‘준전세’나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정부는 월세수요 증가에 대비해 민간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을 활발하게 추진했으나 서울 도심의 월세가 100만원에 가까워 저소득층에게는 문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임차료가 낮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월세제도를 개편하고 소득공제, 주거급여 확대 등 서민을 보호하는 주거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거급여는 소득중위 43% 이하의 월세지출을 파악해 현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또한 외국처럼 월세시대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세입자의 정보 취득과 계약, 입주, 관리에 이르는 과정을 정부가 감독하고 제도와 관행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월세부담이 적은 준전세를 활성화하고 특정계층을 위한 정책적 목적의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며 대형 임대사업자가 참여하는 선진적인 구조의 임대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