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휴가! 신나게 짐을 챙겨 제주까지 날아왔는데 비가 온다면? 제주에는 비 올 때 특별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편의점에서 우비를 구입하고, 이제 새로운 일정을 만들어 보자. 평생 몰랐던 숲의 향기를 찾아가자.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

◆비 올 때는 비자림
비 오는 날 비자림에 오면 코가 호강한다. 숲 속의 온갖 풀이 향을 뿜어내는데 그 중에서도 진하고 청량한 향기는 역시 비자나무다. 이곳에 500~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있으니 숫자로만 봐도 비자향이 그윽하다. 뾰족뾰족한 가시 같은 잎에서 어쩜 그리 좋은 향이 나는지 신통하다. 사실 비자는 느리게 자라기로 유명하다. 100년이 지나도 지름이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얼마나 단단할지 짐작이 간다. 건축, 가구 등의 고급 재료로 쓰이고 바둑판을 만들 때도 이 비자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게다가 열매인 비자는 왕실에서 구충제로 쓰여 주요 진상품이었다.

탐방로 입구에 이르면 코스 약도가 나온다. 2.2km 짧은 코스와 여기서 1km를 더 가는 긴 코스가 있는데 되도록 긴 코스를 권한다. 다만 긴 코스는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고 길 폭이 좁은 편이다. 예상시간은 짧은 코스 30분, 긴 코스 1시간이지만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고 나무와 풀, 길을 감상하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가 약하게 떨어지는 날에는 겹쳐진 나뭇잎들이 비를 가려주고 비 떨어지는 소리가 운치 있게 들린다. 저절로 깊은 호흡을 하게 되는 건강 산책이다. 게다가 탐방로에는 송이가 깔려있다. 여기서 ‘송이’는 버섯이 아니라 화산 쇄설물인 화산송이(scoria)를 말한다. 원적외선 방사율이 92%, 탈취율이 89%, 항균성이 99%나 되는 알칼리성 천연세라믹이니 맨발로 걸어봐도 좋다. 사진을 찍으면 화산송이의 붉은 빛과 숲의 초록이 선명한 조화를 이룬다. 숲길에는 약수터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물이 비자나무 뿌리를 거쳐 나오는 귀한 삼다수다.


숲길 중간쯤에 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긴 코스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오솔길로 들어서면 아이들 있는 가족 여행객이 줄어들고 길은 확연하게 한적해진다. 이 길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다. 긴 코스 끄트머리에는 ‘새천년비자나무’가 있다. 수령 800년이 넘은 비자나무로 2000년에 지정됐다. 키가 14m에 이르고 자라난 모양새가 신령이라도 깃든 듯 주변을 압도한다. 이곳의 비자나무들은 모두 번호표가 달려 있어 세심하게 관리되는데 그 중 1번 번호표를 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어르신’이다. 이곳에서 누구나 기념사진 한장을 찍는다.

이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긴 코스로 진입했던 사거리에 이르러 아직 지나지 않았던 나머지 길을 걷는다. 두 개의 나무가 한 몸이 된 ‘사랑나무’도 보고 제주의 전통 담장을 지나며 입구에서 지나쳤던 벼락 맞은 비자나무도 본다.


비자림
비자림

◆빗소리 들으며 사려니 숲으로
우중 산책으로 비자림과 쌍벽을 이루는 곳이 사려니 숲길이다. 드라마 <시크릿가든> 이후로 크게 알려져 많은 여행자가 오지만 숲길을 완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숲길 입구의 전나무 길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이 부근의 교통이 혼잡해져 주차를 전면 금지시켰다. 올 여름 사려니 숲에 가려면 제주 시티투어버스를 타거나 붉은오름 쪽 입구에 주차하거나 한라생태숲 또는 4.3평화공원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숲의 총 길이는 15km로 난이도가 올레길의 한 코스 정도다. 보통 산 속이라면 오르고 내리는 기복이 많기 마련인데 거리에 비해 길이 평탄한 것이 특징이다. 사려니라는 말은 ‘살안이’ 또는 ‘솔안이’에서 왔다. 여기서 ‘살’이나 ‘솔’은 신령스러운 산의 이름에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려니는 신령스러운 숲이다. 이런 ‘신령함’의 진수는 비가 올 때 제대로 드러난다. 숲길의 안개는 그 농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몽환적이다. 길이 돌아가는 저 끝에서 잘생긴 뱀파이어가 나타날 것도 같고 팅커벨이 날아다닐 것 같은 계곡도 지난다.


숲에선 여러 오름을 만난다. 물찻오름, 말찻오름, 괴평이오름, 마은이오름, 붉은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이 있고 천미천, 서중천 계곡도 흐른다. 사려니 숲길은 조선시대 마방목지로 곳곳에 숯가마터 같은 테우리(목동) 흔적과 목장의 경계를 알려주는 잣성 등도 발견할 수 있다. 여름에는 수국이 많아 꽃길이 된다. 하늘이 파랄 때는 붉은 오름 쪽 전나무 숲이 아름답고 비가 오면 숲의 풀 냄새와 우둑우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

◆차 밭 아래 동굴 카페
다희연은 규모가 꽤 큰 녹차밭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녹차밭 한쪽으로 커다란 동굴이 있다. 그래서 이름보다는 동굴카페로 알려졌다. 동굴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비가 올 때는 이처럼 좋은 피난처가 없다. 보통 ‘이색카페’에만 다녀가는 여행자가 많은데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면 꽤 재미있다.

우선 입구 쪽의 차문화관이다. 이곳 1층에는 찻사발과 문헌 등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족욕실은 인기가 꾸준해 어르신과 함께 온 여행자들에게 ‘꿀팁’이다. 전시실과 이어지는 숍에서는 차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며 2층은 레스토랑이다. 차문화관을 나와 차밭을 산책해 보자. 한 가족이 오랫동안 일궜다는 이곳은 제주도 차 밭 중 하늘과 가장 가까운 느낌이 든다.

아마도 언덕 위의 집 한 채와 짚라인 때문인 것 같다. 차 밭 위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짚라인은 4개의 코스가 이어진다. 연못, 녹차밭, 삼나무숲, 바다가 보이는 코스로 길지는 않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차 밭과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비가 잠시 그친다면 한번쯤 도전해도 좋겠다.


다희연 동굴카페
다희연 동굴카페

하이라이트는 곶자왈 동굴이다. 미끄러운 발 밑을 조심하며 들어가면 옛 사람들이 곡식을 저장했던 흔적과 함께 여행자들이 소원쪽지를 적은 동굴이 이어진다. 동굴 입구 반대쪽으로 밝은 빛이 보이고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 카페가 있고, 이 광장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사방에 작은 굴들이 뚫려있다. 동굴은 긴 것이 30여m라 하고 박쥐가 산다. 물론 박쥐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에는 나오지 않으니 크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카페에 앉아 녹차와 다식을 즐기며 잠시 쉬어가자. 덕분에 ‘비가 와서 정말 좋았다’는 추억 하나쯤 만들어 가길 바란다.


[여행 정보]

제주공항에서 비자림 가는 법

용문로 - 월성사거리에서 ‘시청, 종합경기장’ 방면으로 우회전 - 월성로 - 오라오거리에서 ‘시청, 종합경기장’ 방면으로 좌측 9시 방향 - 서광로 - 국립박물관사거리에서 ‘표선, 봉개동’ 방면으로 우회전 - 번영로 - 거로사거리에서 ‘성산, 삼양’ 방면으로 좌회전 - 연삼로 - ‘성산, 조천’ 방면으로 우회전 - 일주동로 - 우회전 - 조천우회로 - 북촌서교차로에서 ‘선흘’ 방면으로 우회전 - 북선로 - 중산간동로 - ‘덕천’ 방면으로 좌회전 - 동백로 - 11시 방향 - 덕평로 - ‘송당, 비자림’ 방면으로 우회전 - 덕천입구에서 ‘성산, 비자림’ 방면으로 좌측방향 - 비자림로 - 비자숲길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비자림: 검색어 ‘비자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62 비자림
사려니숲: 검색어 ‘붉은오름’ (붉은오름 쪽 입구에만 주차장 있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남조로 1487-73
다희연: 검색어 ‘다희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117

비자림
문의: 064-710-7912
입장시간: (하절기)오전 9시 ~ 오후 6시 / (동절기) 오전 9시 ~ 오후 5시
입장요금: 성인 1500원 / 청소년, 군경, 어린이 800원

사려니숲길
문의: 064-900-8800
입장마감: 오후 4시 이전 입장

다희연
문의: 064-782-0005
입장시간: 오전 9시 ~ 오후 7시 (6월~9월 15일 / 다른 계절은 홈페이지 참고) / 연중무휴
입장요금: 성인 5000원 / 청소년 3000원 / 도민 2000원 (식사, 음료, 카트, 족욕 등 이용시 입장요금 만큼 제하고 결제)
동굴카페: 녹차, 아메리카노, 아이스크림 5000원
레스토랑: 흑돼지녹차돈까스 1만2000원/ 녹차비빔밥 1만원
짚라인: 2만8000원

● 음식
라마네의식주
: 베트남 음식점이다. 쌀국수는 물론 반미를 판매한다. 반미는 베트남식 바게트샌드위치로 기본 반미뿐 아니라 제주 식재료를 적용한 돔베고기 반미도 맛볼 수 있다.
쌀국수 9000원 / 베트남햄반미 9000원 / 코코넛새우찜 2만원 / 베트남커피 4000원
064-782-7437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산간동로 2117

● 숙박
타오하우스
: 제주 공항 근처의 B&B 게스트하우스이다. 단 4개의 객실을 운영하며 편안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로 성수기 예약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010-6298-141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봉6길 9-1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