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날, 기자는 지인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고 얼큰하게 취기가 오를 즈음 지인의 아버지가 화두를 던졌다.

“내 생에 빚이란 없다.”


환갑을 넘은 당신은 지금껏 단 한번도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30대 후반인 지인과 기자는 서로의 눈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둘 다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장만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빚을 내본 적이 없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당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돼 취업문이 쉽게 열렸던 그 시대가 부러웠고 빚을 내 아등바등 살아가는 청년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어르신의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청년층의 빚을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해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최근 빚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가계부채는 이미 1200조원을 돌파했고 지금도 월평균 8조9000억원(한국은행 통계자료)씩 늘고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회구조를 탓하고 싶다. 지금은 기준금리 연 1.25%의 초저금리시대다. 금리가 낮고 인터넷은행과 P2P대출 등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는 더 다양해졌다. 금융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TV광고를 통해 대출받으라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재테크전문가는 그럴듯한 논리와 현란한 글솜씨로 빚테크를 아름답게 포장한다. 대출에 대한 부담이 줄면서 젊은층은 너도나도 집을 사거나 전세금 마련을 위해 은행 문을 두드린다.

그러는 사이 기성세대와 젊은층 간 세대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순금융자산이 마이너스인 동시에 원리금상환액 비율이 40%를 초과하는 한계가구가 30~40대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반면 50~60대는 빚 대신 현금을 보유하는 데 주력했다.

빚이 늘어나는 흐름을 볼 때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챙기는 금융회사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기자수첩] 빚 늘리는 청년들
. 눈덩이처럼 커진 가계부채가 언제 어떻게 부실로 변할지 알 수 없어서다. 부실뇌관을 잘못 건드리면 2003년 카드대란보다 더 큰 부실 핵폭탄이 터질 수 있다. 정부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부실을 막기 위해 개인회생 등 빚 탕감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한쪽에선 모럴해저드가 기승을 부리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청년층의 빚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는 방증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빚에 관대한 인식과 언제든 대출받을 수 있는 현재의 금융시스템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백약이 무효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