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제안하는 목표수익률은 3~4%대입니다. 수익률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고요? 기간은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목표수익은 3개월 만에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재형 KEB하나은행 대치동골드클럽 PB팀장의 말이다. 그는 스스로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3~4개월 만에 3~4%대 수익률을 올리는데 보수적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금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연 3~4%대는 낮지 않은 수익률이다.
이는 그의 투자 방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는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더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킨다. 다시 말해 3~4%대의 수익률을 달성했다면 미련을 버리고 해지한다. 목표수익률 3%는 정기예금 이율보다 두배가량 높고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소 이보단 높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두자릿수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리스크가 높은 투자상품은 지양한다. ‘High Lisk(하이리스크)-High Return(하이 리턴)’, 즉 수익률이 높으면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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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KEB하나은행 대치동골드클럽 PB팀장. /사진=서대웅 기자 |
◆고객 신뢰 얻은 '손실 최소화'
그가 추구하는 투자방식은 '안전'이다. 소중한 고객의 자산을 최소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게 목표다. 안전을 추구하다 보면 때론 수익률이 기대 이상으로 껑충 뛸 때가 있다. 일종의 덤이다.
"지난해 중국펀드가 고공행진 했을 때예요. 고객에게 권한 투자상품이 5개월 만에 40%의 수익률을 달성했죠. 고객은 더 오를 것 같으니 지켜보자고 했어요. 하지만 전 환매하자고 설득했죠. 결국 제 말을 따라줬고 이후 중국펀드는 거짓말처럼 수익률이 뚝 떨어졌어요."
자산을 지키면서도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은행계 PB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어서일까. 자산가 사이에서 그는 '신뢰와 뚝심 있는 인물'로 통한다.
"중국펀드를 해지한 고객이 다른 사람의 말은 안 믿어도 당신 말은 믿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분은 30년 넘게 금융거래를 해온 투자 베테랑이었어요. 16년간 금융권에 있으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타이밍도 중요시한다. “종잣돈이 있다고 무조건 투자를 권하지는 않아요. 자산이 많거나 금융거래를 많이 해본 고객들, 환매 후 높은 수익으로 이익을 얻은 고객은 그 돈으로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제 대답은 ‘꼭 그렇진 않다’입니다. 상황에 따라 한달 혹은 두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 요즘 같은 저금리시장이라면 더욱 보수적으로 권하죠.”
투자뿐만이 아니다. 자산관리도 안전추구형이다. “자산관리를 처음 시작하는 분은 무조건 ‘목돈’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덜 쓰고 많이 저축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죠.” 다소 보수적인 방식이지만 역시 통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6년 만에 1억원을 모았고 집도 장만했다.
“첫 직장에서 월급이 140만원 정도였어요. 이중 100만원을 저축했죠. 부모님에게 용돈으로 20만원을 드리고 나면 20만원밖에 안 남았어요. 제 한달 용돈이죠. 그렇게 모으기 시작하니 6년째 1억원이 생기더군요. 대출을 더해 집부터 샀습니다.(웃음)”
물론 저축도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3년 단위로 적금이나 펀드에 가입해 만기가 도래하면 그 시점에서 단기·중기 목적자금을 구분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특히 사회초년생은 결혼준비 자금 등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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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
◆IMF 이후 PB 꿈 키워… 설득·신뢰의 힘은 '독서'
그가 KEB하나은행 PB팀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의외로 그의 대학 전공은 역사학이다. 평소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엔 첫 직장으로 대기업 A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는 1년 후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뒤로하고 하나은행 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역사학 전공이 금융에 도움이 될까 싶지만 이 팀장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금융업이 인문계열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봐요.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선 여러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고객을 설득시키고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예요.” 그는 지금도 한달에 두번 모교 도서관을 찾아 역사책을 본다.
마지막으로 그의 꿈을 물었다. 기자는 또 한번 놀랐다. 그는 이미 꿈을 이뤘다고 했다. PB가 꿈이자 목표였던 것이다. “대기업을 뛰쳐나온 것도 PB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산관리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는 판단에서였죠.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이기도 했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다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자산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시간30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쑥스러워하는 그를 보면서 점점 진심이 느껴졌다. 외형적으로 볼 땐 웃음이 많고 겸손했다. 그러나 자산관리법 등에 대해선 본인의 뚜렷한 주관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신뢰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실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어렵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당신 말은 믿는다’고 말하는 고객을 늘리겠다는 목표에 정진하다 보면 보람이 쌓일테니까요.”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