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말레이시아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최모씨(29)는 해외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했다. 그가 낸 왕복항공료는 44만원. 위탁수하물이 20kg에 달해 수수료 5만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하지만 최씨는 억울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비용을 더해도 대형항공사를 이용했을 때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낀 비용을 현지에서 자동차 렌트비로 활용할 수 있었다.
#2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배모씨(37)는 저비용항공사 신봉자다. 직업 특성상 시간관리가 힘들어 여행계획을 미리 세우는 게 어렵다. 갑자기 시간이 생겼을 때를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언제 돌아올지 모를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래서 배씨는 저비용항공사가 갑자기 내놓는 특가항공권을 이용해 가까운 일본에 자주 간다. 운이 좋을 땐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일본을 왕복할 수 있다. KTX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것보다 저렴해 ‘라면 먹으러 일본 다녀온다’는 농담이 현실이 됐다.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 LCC)가 해외여행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저비용’이란 말 탓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부정적 이미지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오히려 요즘엔 최씨와 배씨처럼 LCC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여행을 할 때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건 항공권 값이다. 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총 여행경비가 줄어드는 셈이고 아낀 비용으로 숙소나 식사에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항공권을 싸게 사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분명 LCC는 고민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우리나라 LCC시대는 2005년과 2006년 한성항공과 제주항공이 프로펠러 항공기로 취항하며 시작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LCC시장은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 에어부산의 5사 체제로 굳어졌다. 조만간 에어서울이 이 시장에 참여하면 6사 체제로 재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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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항공사.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
◆우리나라 LCC의 커진 존재감, 배경은?
우리나라 LCC의 최근 5년간 상반기 국내선 여객분담률은 2012년 43.1%, 2013년 47.8%에서 2014년 49.0%로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 53.6%를 넘어 올해는 56.3%에 달했다. 국제선 영향력도 커졌다. 2012년 6.8%에 불과하던 분담률이 2013년 9.3%로 올라서더니 2014년 들어 11.6%로 10% 벽을 넘었다. 메르스 사태가 휩쓴 지난해도 성장을 이어가며 13.2%를 기록했고 저유가 기조가 이어진 올해는 17.9%로 높아졌다.
2014년 상반기 국적 FSC의 점유율은 약 51%, 외항사는 약 38%였다. 국적 LCC는 약 11%. 올해 상반기엔 국적 FSC가 45.6%, 외항사가 36.4%로 하락세를 보인 반면 국적 LCC는 약 18%를 차지했다. LCC가 성장하며 외항사와 기존항공사의 점유율을 흡수한 것이다.
이처럼 LCC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한 요인이 뭘까. LCC업계가 꼽은 가장 큰 배경은 '타보니 괜찮다'는 입소문이다. ‘비행시간이 1시간 이내인 국내여행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용해본 사람들이 “이 정도면 가까운 해외여행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주변에 권유하기 시작한 것.
LCC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이왕이면 저렴한 항공편을 찾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데다 소셜커머스의 등장으로 저비용항공사들이 상품을 팔기 쉬워졌고 그만큼 소비자도 다양한 상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어 해외여행 문턱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게다가 LCC는 B737-800 등 소형기를 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행시간이 5~6시간 걸리는 동남아시아와 괌 등 대양주와 일본, 중국 등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거리가 가깝고 운임이 저렴해 찾는 사람이 늘었다. 최근엔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신규 취항이 이어지며 항공사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우리나라 LCC 중에선 제주항공과 진에어가 2009년에 첫 국제선 운항을 시작했다.
LCC 관계자는 “항공기 도입과 취항 노선이 늘어남에 따라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앞으로 시장의 포화를 준비해야 하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기존 FSC의 파이를 빼앗은 게 아니라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운 것인 만큼 신규취항지가 늘고 또다시 입소문을 타면서 이용객이 증가하는 선순환구조로 이어졌다.
◆저렴한 운임 위해 쥐어짜는 LCC
LCC는 항공안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에서 운영비용을 줄여 기존 대형항공사보다 낮은 운임을 제공한다. 건물임대료는 물론 기내소모품과 승무원 수 등 다양한 곳에서 비용을 절감해 운임을 저렴하게 책정한다. 따라서 LCC는 승객이 얼마나 타느냐가 수익의 바로미터며, 탑승률을 높이는 게 존속의 열쇠다.
우리나라와 해외의 LCC는 원가를 줄인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해외 LCC는 기내식과 위탁수하물 등을 비롯해 홈페이지 예매 시 카드수수료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물 한잔도 돈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 LCC는 공항 등 주요 시설을 FSC와 함께 쓰며 대개는 위탁수하물과 기내서비스 비용을 받지 않는다. 국내선을 이용하더라도 FSC처럼 음료를 제공하고 물도 달라는 만큼 더 준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비스’와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서비스’의 개념이 다른 탓이다.
항공업계는 냉정한(?) 해외 LCC를 이용해본 국내 소비자가 늘어 LCC의 비용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여긴다. 국내 LCC 관계자는 “해외 LCC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의 사업구조로 운영하기보다는 ‘정’을 앞세우는 한국적 문화를 감안해 절충하는 게 중요하며 점차적으로 유료화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항공업계 관계자는 “무료수하물 서비스 등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건 반대로 해당 서비스가 불필요한 사람들에겐 운임인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진정한 LCC로 거듭나려면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