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넘어서는 경제적 가치 '상상 그 이상'
문화재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지정해 관리하는 문화유산이다. 전통, 민족의 얼 등이 담겨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재가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수록 문화재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려는 욕구가 커진다. 희소성이 커질수록 가격과 소유욕이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일부 문화예술품은 경매 등의 방식으로 값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일반 공산품과 같이 수요, 공급의 원리가 작용한다. 다만 공급 탄력성이 거의 없는 만큼 수요 탄력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보유한 문화재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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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창덕궁 달빛기행, 한국의집 ‘코리아심청’.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
◆문화재 총 가치 1500조원 이상… 창덕궁 2312억원
문화재보호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문화재는 인위적·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의 분류는 지정권자인 행정주체에 따라 크게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로 구분된다. (표 참조)
문화재의 특수성과 보호하고 활용하는 주체가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시도조차 쉽지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본 적이 두번 있는데 가장 최근 자료가 2013년 한국산업개발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받은 ‘문화재 보존의 사회경제적 가치 및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효과’”라며 “당시에도 안팎에서 문화재를 돈으로 따지는 게 옳지 않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기획재정부 예산안 심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겨우 조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화재의 총 가치는 약 1535조90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약 1500조원)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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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
주요 개별 문화재의 가치를 살펴보면 ▲창덕궁(사적 122호) 약 2312억2000만원 ▲서울시청(등록문화재 52호) 약 1311억9000만원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약 1250억2000만원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22호) 약 1028억2000만원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약 856억4000만원 등이다.
문화재가 창출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전국적으로 연간 생산유발효과가 약 1조4397억5000만원,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약 7459억1000억원, 취업 유발효과가 약 8196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문화재 보존 및 활용에 투입된 예산에 집중해 계량적으로 문화재를 분석한 결과다. 하지만 문화재는 유형의 화폐적 가치를 넘어서는 무형적·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간직하기 때문에 수치화된 분석결과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해외로 반출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문화재 매매를 법으로 허용하는 만큼 경매를 통해 값이 매겨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 서울옥션의 최근 경매에선 ▲철조석가여래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51호) 20억원 ▲월인석보(보물 제745-3호) 7억3000만원 ▲정약용의 하피첩(보물 제1683-2호) 7억5000만원 ▲경국대전(보물 제1521호) 2억8000만원 등의 거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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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 황해봉.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
◆무형문화재 122건 지정… 열악한 전승 환경
무형의 문화적 소산인 무형문화재는 1964년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122건의 국가무형문화재가 지정됐다. 다만 형태가 없기 때문에 값을 매기기 애매하다.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한 경우는 문화재청의 연구용역 의뢰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09년 조사해 발표한 ‘문화재의 공익적·경제적 가치분석 연구’ 보고서가 유일하다. 보고서에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종묘제례·제례악에 대한 평균지불의사 금액을 추정해 관람료 등을 집계한 결과 연간 3184억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무형문화재의 핵심은 사람이다. 인간문화재로 대변되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중심으로 보존·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고 좁다.
‘전수자 → 이수자 → 전수교육조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입문단계를 거쳐 전수자로 3년 이상 활동해야 이수자로 승급할 자격이 주어지고 이수자로 5년 이상 활동해야 전수조교로 올라갈 수 있다. 전수조교로 7년 이상 활동하면 인간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기지만 실제 지정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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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화재청 누리집 참조 |
문화재청이 지난달 공개한 주요업무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는 122개 종목에 173명이 인간문화재로 등록됐다. 전수조교가 290명, 이수자가 5708명, 전수자가 70명이다. 전통문화의 맥을 이으려는 이들 중 인간문화재는 3%도 채 안되는 셈이다.
경제적 환경도 열악하다. 올해 기준 일반종목 인간문화재의 월 지원금은 131만7000원, 전수조교는 66만원, 전수장학생은 26만3000원이다. 이수자는 아예 지원금이 없다. 서도소리, 가곡, 발탈, 갓일, 줄타기 등 38개 취약종목 인간문화재는 월 171만원, 전수조교는 92만1000원으로 지원금이 조금 더 늘어나지만 전수자와 이수자는 차이가 없다.
이들이 공연이나 전통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별도의 수입을 얻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취약종목의 한 이수자는 “이 시대 최고의 전통문화 예술가가 이 정도의 경제적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대부분의 전승자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인만의 독특한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무형문화재인데 소명의식이 없다면 전승자가 되기 어렵다”며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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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경수 홍보팀장 |
[미니인터뷰 1] 김경수 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장
전승자서 도우미로 “문화재와 함께한 삶 후회 없다”
“문화재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예능·기능분야 전승자의 삶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대부분이 제2의 직업을 갖고 두번째 직업에서 생계를 위한 돈을 벌면서 근근이 전통문화를 잇고 있죠.”
김경수 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장은 지난달 31일 <머니S>와 만난 자리에서 무형문화재 종사자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 팀장도 20대 중반까지 봉산탈춤 전승자로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의 의지와 패기는 흔들렸다.
결국 그가 택한 곳은 문화재와 관련이 깊은 일을 하는 한국문화재재단이었다. 이곳에서 김 팀장은 무형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의 활동공간을 넓혀주는 일을 주로 맡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직도 가끔 봉산탈춤 공연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부업이 됐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전통문화 활성화사업을 진행하고 그 사업들이 성과를 거둘 때 기쁨을 느끼죠. 특히 유형과 무형의 전통가치를 융합하고 보존하는 한편 창의적으로 활용해 과거와 현재의 소통의 길을 넓힐 수 있어 매력을 느낍니다.”
최근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협업과 융합이다. 이와 관련 스위스의 초일류 명품시계회사 바쉐론 콘스탄틴과 공동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국내 대표 철강기업인 포스코와 포스코이음전 프레스키트도 작업 중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프로젝트는 함을 만드는 국내 장인 3명이 협업해 명품시계를 담는 함을 만드는 작업이다. 포스코이음전 프레스키트는 포스코1%나눔재단, 한국문화재재단, 인간문화재(공예작가)가 협업해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현대사회에도 어울리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장도장, 만년필 등을 제작하는 사업이다. 이달 중으로 작업이 완료되면 포스코 본사 내 전시장과 킨텍스에서 차례대로 작품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김 팀장의 현재 목표는 열악한 무형문화재 환경이 차츰 나아지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아직 환경이 열악한데 요즘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하는 기업들이 문화재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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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익재 연구원 |
[미니인터뷰 2] 정익재 경주문화재연구소 고분발굴팀 연구원
“내가 발굴한 유물에 자부심 느껴”
경북 경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로 불국사, 석굴암, 고분 등 명승고적이 즐비하다. 유적이 어찌나 많은지 수십년간 발굴이 이뤄졌음에도 신라시대의 유적을 정비하고 복원하는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직 미완인 신라왕경 핵심유적을 복원·정비하기 위해 2025년까지 약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경주지역의 유적지 발굴을 책임지는 경주문화재연구소 고분발굴팀에서 7년째 근무 중인 정익재 연구원의 이야기를 <머니S>가 들어봤다. 다음은 정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 현재 하는 업무는.
▶신라 왕족과 귀족의 집단 묘역인 경주 쪽샘지구 유적지를 발굴 및 조사하고 있다.
- 이 일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분발굴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근무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책에 나오지 않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 수 있어 좋다. 또 내가 발굴한 유물이나 유적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도 느낀다.
- 유적발굴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이 일은 계속 공부해야 한다. 최근 관련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논문까지 통과됐는데, 일을 하며 틈틈이 작성한 논문이 통과됐을 때 가장 기뻤다.
- 유적발굴을 꿈꾸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기존에 나온 학설들, 대학에서 배운 것들과 다른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나 학문적 대상을 대했을 때 궁금증을 갖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