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투아웃제 엎친데 덮쳐… '영업·마케팅' 대수술 불가피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접대·청탁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제약업계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주요 영업대상인 대학병원·대형병원 의사들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돼 업계 전반에 걸쳐 암암리에 이뤄지던 리베이트 영업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앞서 도입된 리베이트 쌍벌제와 투아웃제에 김영란법까지 더해지며 기존 영업·마케팅 방식은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김영란법 열공모드. 지난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김영란법 시행과 기업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기업관계자들이 조두현 국민권익위원회 법무보좌관의 강연을 서서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김영란법 열공모드. 지난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김영란법 시행과 기업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기업관계자들이 조두현 국민권익위원회 법무보좌관의 강연을 서서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제약 영업·마케팅 환경 '격변'

오는 9월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임직원 등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제공받을 경우 무조건 형사처벌 받는다. 또한 직무 관련자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의료계도 자유롭지 않다.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 병원 소속 의사들도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대와 연결된 민간 대형병원 의사들도 같은 규제를 적용받으며 병원 소식지나 매거진을 발행하는 중·소병원도 언론인으로 분류돼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

환자가 복용하는 의약품 선택권을 단독으로 가진 의사는 제약사의 핵심 영업·마케팅 대상이다. 이로 인해 리베이트 쌍벌제·투아웃제 등이 시행 중임에도 리베이트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리베이트에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던 거대 다국적 제약사 한국노바티스도 최근 검찰 수사 결과 의약전문지 및 학술지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의사들에게 수년간 리베이트 25억9000만원을 제공한 것이 드러나 관련자 34명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여기에 김영란법 시행으로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던 기존 영업·마케팅 방식은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새로운 법에 맞춰 제약사들이 맞춤형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지난 11일 김영란법 내용이 반영된 ‘CP FAQ 가이드북’ 개정판을 발간하고 직군별 맞춤교육에 들어갔다.

대웅제약은 실제 업무 현장에서 직원들이 문의한 사례를 학술대회, 광고, 기부 등 각 주제별 질문에 따라 정리함으로써 보다 쉽게 CP(Compliance Program,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 규정을 이해하고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이와 함께 대웅제약은 하반기 중 CP 항목 증빙 관리시스템인 ‘스캐닝센터’도 구축할 계획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2007년 CP 규정을 도입한 후 매년 임직원 교육 및 CP 강화 선포식 등을 통해 임직원에게 공정거래 자율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이번 가이드북 발간을 통해 전 임직원의 CP 준수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년 전부터 강력한 CP 규정을 자체적으로 운영한 한미약품은 최근 김영란법 대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또한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의사, 공직자, 언론인 등을 만날 때마다 접촉 목적과 법인카드 사용내역 등을 기록하는 규정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주요 영업활동 대상인 의사에 대한 별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영업사원들이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 공유할 계획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법안 자체에 애매모호한 표현도 많고 명확한 지침도 없어 자체적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내부 논의를 거쳐 조만간 김영란법에 대한 지침을 확정해 공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아에스티도 김영란법을 적용한 사내 가이드라인과 전산시스템을 마련하고 법 시행일에 맞춰 시스템을 가동하기로 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시한 사례에는 제약업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자체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기존 CP 규정에 김영란법 가이드라인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종근당, 동국제약 등도 아직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양사 관계자는 “아직 김영란법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법 준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애매모호한 규정에 '전전긍긍'

이런 가운데 김영란법은 기존 약사법이나 공정경쟁규약보다 우선해야 하는 법이지만 애매모호한 내용이 많아 각 제약사들이 맞춤형 영업·마케팅 정책 수립에 애를 먹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견제약사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현재의 영업·마케팅 방식을 고수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지만 명확한 지침이나 사례가 없어 하반기 관련 예산집행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더욱 좁아진 법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영업·마케팅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와 제약관련 단체들이 해당 내용을 논의하고 있지만 명확한 유권해석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자문·강연료, 연구용역, 전문가 기고, 학술대회 지원 등 기존의 활동들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아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종식 가산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제약사들이 강의·자문료 책정에 고민이 깊다”며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라 현행 공정거래규약 기준보다는 김영란법이 제시하는 기준으로 경비지출 프로세스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