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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신항 터미널. |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며 전세계에서 물류대란이 빚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해운업계의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입항하지 못한 한진해운 선박들이 정처없이 표류하는 사이 글로벌 선사들은 한진해운 물량 흡수를 위해 물밑작업에 돌입했다.
◆ ‘태평양 노선’ 눈치싸움
글로벌 선사들은 한진해운이 빠진 자리를 파고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특히 기존에 한진해운이 주로 운항하던 아시아-북미를 잇는 태평양 노선을 노리는 선사가 많다. 한진해운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태평양 노선에서 벌어왔다. 특히 북미 수출물량이 전체 물량의 18.1%를 차지했다. 지난해 아시아~북미 노선 점유율은 세계 3위인 7.39%였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에 따르면 세계최대 해운동맹인 2M은 최근 태평양 노선에 신규서비스 개설을 준비 중이다. 2M에 소속된 세계최대 선사 머스크라인은 오는 15일부터 옌톈·상하이·부산·로스앤젤레스를 기항하는 ‘TP1'을 개시한다. 역시 2M 소속인 MSC도 같은 날 부산·상하이·옌톈·프린스루퍼트·부산을 경유해 아시아와 캐나다 서해안을 잇는 신규 운송 서비스인 ‘메이플'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만의 양밍은 미국 노선 선박이 부산항을 경유하도록 했고, 일본의 K-라인은 2척을 미주 항로와 대양주 항로에 추가 투입한다. 대만 에버그린은 컨테이너 8000개를 싣는 1척을 미주 항로에 추가로 투입해 부산항에 기항시킨다. 중국원양해운도 부산에 배를 투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항은 최근 10년간 동북아시아 환적물동량(옮겨 싣는 짐)의 80%를 차지하는 아시아 지역 핵심 허브항구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개시에 따라 피해가 우려되는 화주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해운업계에서는 이들이 한진해운의 시장지분을 흡수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해운업의 경쟁력을 외국선사에 빼앗긴다는 우려가 심화되는 가운데 현대상선은 국내 중견 해운사인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과 함께 해운동맹을 결성해 노선 지키기에 나선다. 이 해운동맹은 9월말부터 총 15척의 선박을 투입해 4곳의 동남아노선에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들은 아시아(광양·부산)-베트남·태국 노선을 신설해 종전 한진해운이 운항했던 동남아 노선을 대체한다. 아시아(광양·부산)-싱가포르·말레이시아, 아시아(광양·부산·울산)-인도네시아, 아시아(인천·부산)-인도네시아 노선도 새롭게 맡는다.
◆ 한진해운 회생 가능성 없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회생가능성은 없는 걸까. 많은 해운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시그널이 발생한 시점부터 “해운업의 특성상 법정관리는 청산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해왔다.
선박 압류, 입항금지조치 등으로 사실상 운항이 불가능해진 현재 상황은 전문가들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법정관리가 청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해운동맹 제외’다.
글로벌 운송시장에서 같은 항로의 선박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해운동맹이라는 일종의 카르텔을 통해 경쟁력을 지킨다. 해운동맹은 노선을 공유하며 비용을 감축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해운동맹이 없으면 해외 영업망 구축 자체가 어려워진다.
신뢰도를 중요시하는 해운산업에서 선사가 법정관리 상황에 처할 경우 해운동맹은 해당 선사를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신들의 신뢰도마저 떨어질 수 있기 때문. 실제로 한진해운이 속한 글로벌 해운동맹 CKYHE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한 직후 화물 선적 중단(suspension)을 전격 통보했다. 사실상 동맹퇴출과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한진해운은 당초 내년 4월 출범할 새로운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 포함됐는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디얼라이언스에서도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진해운 회생절차를 진행중인 법원 역시 한진해운의 청산과 회생을 결정할 때 ‘해운동맹 가입 유지’ 여부를 기준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법원은 한진해운 경영진 측에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 유지 방안을 수립해달라고 요청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디얼라이언스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점유율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디얼라이언스가 정부와 한진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경우 잔류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