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3일 경기도 화성시남부종합사회복지관의 1층 현관 앞. 1.5m 높이의 유리가 깨져 있다. 전날 저녁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국내 최대 규모 5.8의 대지진 여파다.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야 닿는 340㎞ 거리의 건물까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일주일 후인 9월19일 다시 여진이 발생하자 정부는 하루 만에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건축물 내진설계 확대와 기존건물의 내진성능을 보강하는 방안이 담겼고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그동안 한국은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대로 인식돼 건축물 내진설계가 부실했다. 하지만 이번 지진을 계기로 새 건축물 내진설계뿐 아니라 기존건물의 리모델링이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뉴시스 김동민 기자
/사진=뉴시스 김동민 기자

◆불법 건축·증축한 건물 막을 방법 부재
내진설계란 건축물이 지진에 견디도록 정밀하게 만드는 공법이다. 가로축을 튼튼하게 짓거나 건물 하부에 고무로 만든 특수물질을 넣어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충격을 줄여주는 특수장치(댐퍼)를 부착해 내진을 보강하는 방식도 있는데 최근 롯데건설에서 개발 특허를 취득했다. 2011년 일본에서는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났으나 건물 붕괴로 인한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 내진설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내진설계가 도입됐다. 건축법상 설계기준을 지켰다고 가정할 때 3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의 건축물은 내진설계를 갖췄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9월20일 내놓은 건축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의무 내진설계 대상이 2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로 확대된다. 이와 함께 시공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도록 하고 건축법을 위반해 인명·재산피해를 일으켰을 경우 관련자에게 최장 1년의 업무정지와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문제는 1988년 이전에 지은 건물과 불법으로 건축·증축한 건물이다. 지난해 서울시 국정감사 결과 한해 동안 허가받은 건물은 143만9547개, 이 중 법적으로 내진설계를 해야 하는 건축물은 33%다. 그러나 내진설계율이 가장 높은 강서구도 32.2%에 그친다. 내진설계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비율이 낮은 데다 실제 내진설계율은 더 낮은 것이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안도 부족한 실정이다. 박형재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 사무관은 “내진설계 여부를 전수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표본을 추출해 모니터링하고 앞으로는 과징금을 도입함으로써 건축주들이 경각심을 갖게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부동산S토리] 대한민국, 지진에 안전합니까

◆학교 내진설계 교체, 181년 걸린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 이후 앞으로 허가받는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진설계 기준에 차별이 있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정부령이 정한 지진구역 내 건축물이나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미술관·박물관 등은 규모 6.0~7.0 지진에 대비가 가능하도록 내진설계를 적용하나 정작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주택이나 학교, 공공시설은 내진설계율이 낮다.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해야 하는 곳은 3만1797개, 실제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7553개(23.8%)다. 정부가 올해 내진보강할 계획인 학교는 134개로 내진설계를 하지 않은 학교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훈현 의원은 “이 속도로는 모든 학교에 내진설계가 적용될 때까지 181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 지하철 1∼4호선의 53.2㎞(40%)는 내진성능을 확보하지 않았다. 전체 공공시설의 내진보강률은 42.4%로 추정된다. 이영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내진설계의 중요성보다는 정책의 실효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비용을 내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강제성이 있고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경우 정책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엄격한 기준만 갖다 대면 범법자를 양산할 수 있는 만큼 현실적인 재정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1∼4호선 내진보강 사업비는 약 3220억원으로 추정된다.

일본과 영국은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민간자본을 활용해 체계적인 인프라관리에 성공했다. 반면 미국은 인프라관리에 실패하며 초기비용 대비 몇배에 달하는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사는 집, 내진설계는?

내가 사는 집이나 일하는 회사가 과연 내진설계를 제대로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또 설령 내진설계가 됐더라도 지진에 안전한지, 붕괴 가능성은 없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건축물 내진설계 여부는 건축물대장 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등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서비스를 제공한다. 건물 허가일자와 층수, 용도, 연면적을 입력하면 내진설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서민정 삼성물산 건설부문 상품디자인실 과장은 “지진 규모 5.5~6.5일 때 잘 설계한 건물은 기울어지는 정도에 그치지만 일반건물은 붕괴되거나 더 큰 피해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큰 지진일 경우 손상이 불가피한데 내진설계는 붕괴를 늦추고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