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주가가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62만원(종가 기준)이었던 주가가 다음날에는 50만8000원으로 18.06%포인트 급락했다. 4일 오전에도 추가로 10%이상 주가가 폭락해 한때 43만5000원까지 하락했다. 이 시기 한미약품 주식을 샀던 개인투자자들은 거래일 기준 2일도 채 안돼 한주당 18만원 이상 손해를 봤다.
이 과정에서 기관과 외국인이 중심이 된 공매도 물량은 급증했다. 지난달 30일 한미약품 공매도 수량은 10만4327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하루 평균 공매도 수량(약 4850주)보다 21배 이상 많은 공매도가 이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공매도 세력이 한미약품의 악재성 공시 사실을 미리 알고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공매도는 합법적인 투자기법이다. 하지만 사전에 정보를 취득한 뒤 거래에 나섰다면 불법이다. 특히 베링거인겔하임이 기술 계약을 해지했다는 공시가 나온 지난달 30일 9시29분 이전에 공매도를 한 이들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전날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텐과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호재성 공시를 발표했다. 호재성 공시 다음날 장이 열리자마자 공매도를 한다는 건 정상적 투자행태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 |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베링거인겔하임 계약해지 및 지연 공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
결국 이날 하루 동안 한미약품 주가가 18.1% 떨어진 사이 기관은 2037억원치를 팔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2101억원을 매수했다. 한미약품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가도 비슷하게 움직였다. 한미약품 주가 폭락 사태에서 기관과 외국인은 공매도를 이용해 탈출하고 개인투자자는 꼼짝없이 당한 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미약품 공매도 세력은 이날 최대 23%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미약품 주가는 장 시작과 함께 전 거래일보다 5.48% 오른 65만4000원(최고가)으로 시작해 29분 뒤 악재 공시가 나온 이후 추락을 거듭하며 50만2000원(19%↓)까지 떨어졌다.
공매도 세력이 한미약품 주식을 최고가에 팔고 최저가에 되샀다면 1주당 15만2000원의 차익을 챙겨 23.24%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호재 공시 이후 14시간 만에 나온 악재 공시로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본 가운데 기관과 외국인들은 공매도를 통해 이익을 본 정황이 드러난 만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와 관련해 공시의 적정성과 미공개 정보 이용행위 등 불공정거래 여부를 면밀히 조사해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상응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