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모인 세대 초월 트레이너들, 포켓몬으로 대동단결
“저쪽에 리자드 있어요! 4분10초 남았어요!” 한 남성이 외치자 십여명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뛴다. 이들의 목적지는 속초해수욕장 입구의 한 가로등 근처. 이 ‘스팟’에서 포켓몬스터의 캐릭터인 ‘리자드’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간다. 함께 달려간 스팟에서 포켓몬 고 앱을 실행하니 진동이 울리며 리자드가 속초해수욕장을 배경으로 둥실 떠오른다.
정식출시는 안됐지만 게임은 실행되는 ‘포켓몬고 성지’ 속초. 포켓몬 고가 속초에 상륙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초반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관광객들은 여전히 포켓몬 사냥에 열을 올리고 속초시민은 포켓몬 마니아로 거듭났다. 지난 1일 국내 포켓몬 고의 성지로 불리는 ‘태초마을’ 속초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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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속초해수욕장 인근에서 포켓몬 고를 즐기는 모습. /사진=진현진 기자 |
◆캠핑용 의자에서 텐트까지 ‘북적’
개천절 특수를 맞은 속초는 북적였다. 숙박비는 평소 주말의 2배였고 빈 숙소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북적이는 곳은 속초해수욕장 주차장 앞. 길가에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부터 캠핑용 의자가 곳곳에 놓였고 텐트까지 설치돼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포켓몬 고를 하는 포켓몬 트레이너(포켓몬을 잡는 플레이어)임을 알 수 있었다.
“깨짔다, 깨짔다.”
포켓몬 트레이너 무리로 다가갔을 때 가장 먼저 들린 소리는 경상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탄성 섞인 말. 포켓몬을 잡았지만 포켓몬이 포켓볼을 깨고 나온 상황인 듯 했다. 어린아이뿐만이 아니다. 성인들도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화면을 미는 듯한 제스처로 포켓몬을 포획하고 있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잡았다”, “아까 잡은 포켓몬이잖아” 등이다. 애니메이션 속 포켓몬 트레이너가 현실이 된 셈.
속초해수욕장 곳곳에서 연출되는 진풍경은 여전했다. 보조배터리를 넣은 힙쌕을 메고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같은 자리를 서성이는 이용자부터 포켓몬 알을 부화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이용자까지. 주차된 차 안에서도 휴대폰으로 포켓몬을 사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속초 해수욕장 근처의 한 카페 사장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포켓몬 고 게임을 하기 위해 속초를 찾는 사람이 많다”면서 “인근 편의점은 매출이 400~500% 올랐다”고 전했다.
포켓몬 고를 하러 경기도에서 매주 온다는 하재욱(39)씨는 “아이들보다 포켓몬 고를 더 좋아한다”며 “이 장소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하씨는 전주에 비해 숙소 값이 두배로 올라 텐트에서 당일 새벽까지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저녁도 중국음식을 텐트로 배달시켜 해결했다. 들뜬 목소리로 포켓몬 고를 설명하는 하씨는 “여행을 자주 가는데 속초에 오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가족들과 여행 온다는 생각으로 매주 와서 포켓몬을 잡는다”고 전했다.
포켓몬 고를 하러 경기도에서 매주 온다는 하재욱(39)씨는 “아이들보다 포켓몬 고를 더 좋아한다”며 “이 장소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하씨는 전주에 비해 숙소 값이 두배로 올라 텐트에서 당일 새벽까지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저녁도 중국음식을 텐트로 배달시켜 해결했다. 들뜬 목소리로 포켓몬 고를 설명하는 하씨는 “여행을 자주 가는데 속초에 오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가족들과 여행 온다는 생각으로 매주 와서 포켓몬을 잡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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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진현진 기자 |
◆비가 와도 내 포켓몬은 ‘GO’
개천절 전날인 2일, 속초는 비가 오락가락한 흐린 날씨였지만 포켓몬 트레이너들의 열의는 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명당인 속초 엑스포공원에는 포켓몬 고를 하기 위해 우산과 우비를 챙기고 휴대폰을 방수팩에 넣은 커플과 가족이 눈에 띄었다.
특히 현실은 엑스포공원이지만 앱 속에서 ‘포켓몬 체육관’으로 구현된 스팟 주변에는 끊임없이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는 트레이너들이 가득했다. 자신의 포켓몬을 체육관의 주인으로 등극시키기 위해 대결을 펼치는 것. 초기에는 포켓몬의 능력치인 CP(Combat Points)가 600~700정도면 체육관 관장이 될 수 있었지만 현재는 CP 1800 이상이 평균이다. 3개월간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얼마나 열심히 포켓몬을 키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속초 엑스포공원 근처에 위치한 편의점에서는 포켓몬스터의 인기캐릭터인 ‘피카츄’ 인형과 포켓몬스터 보조배터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7월 거리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포켓몬 고를 홍보했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부분. 이는 포켓몬코리아 측에서 속초시청을 방문해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포켓몬 고’라는 명칭뿐 아니라 포켓몬 관련 상품도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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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진현진 기자 |
◆‘포켓몬 고’로 대동단결·세대초월
그러나 포켓몬 고에 흠뻑 빠진 유저들은 더욱 광범위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게임을 즐기며 포켓몬에 대해 이야기하고, 포켓몬 고를 켜놓고 걷기운동을 하는 속초시민도 다수였다.
“매일 아침 3시간, 오후 4시간, 저녁 4시간씩 포켓몬 고를 해요. 아침마다 포켓몬 알을 부화하기 위해 숲을 걷고 자전거를 타죠. 포켓몬도 거의 다 모았어요.”
속초해수욕장에서 만난 속초시민 이씨(56)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포켓몬 고는 잡는 재미가 있고 운동도 할 수 있어 즐긴다고 말한다. 이씨와 함께 매일 명당자리를 찾는 이들은 10명 정도. 파주에서 온 부부와 포켓몬 고를 즐기기 위해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섭렵했다는 최미령씨(56), 현재까지 1만1000마리를 포획했다는 최현준씨(29) 등은 포켓몬 고를 하며 처음 만나 안면을 텄다.
이들은 포켓몬이 어디에 몇분 동안 나타나는지 알려주는 웹상의 지도를 켜놓고 근처로 달려가며 주변 관광객에게 포켓몬의 위치를 알렸다. 포켓몬 위치 알림을 들은 한 가족이 “저 아저씨 잘 만났다”고 웃으며 뛰어가는 장면도 포착됐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포켓몬 고 하나로 대동단결된 속초.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속초의 중심에서 바라본 포켓몬 고는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행 혹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고 있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