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주인공의 활동영역이 확장됐다. 만화 특유의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극장가로, 방송가로, 게임가로 진출해 새로운 산업을 이끄는 주역이 된 것. 잘 만들어진 하나의 만화가 영화로 제작되고 영화가 성공하자 스핀오프 격의 드라마로, 게임IP로 활용하는 초대박 캐릭터도 속속 등장한다. 국내외 문화산업 전반에 성공한 1차 콘텐츠가 장르의 장벽을 넘어 2·3차 콘텐츠로 재가공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확산됐다.

◆관객 사로잡은 마블 코믹스의 저력


‘만화의 영화화’하면 전세계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마블’일 것이다. 극장가를 주름잡는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영화 <아이언맨>, <토르>, <어벤져스> 등은 마블코믹스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각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볼거리를 선사한다.

70여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미국의 만화책 출판사 마블코믹스는 ‘마블 유니버스’라는 탄탄한 세계관 속에 8000여개의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 엑스맨, 판타스틱 포, 헐크, 아이언맨, 닉 퓨리, 닥터 스트레인지, 호크아이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유명 캐릭터를 대량 보유, 국내에도 정발본이 발행돼 상당수의 마니아를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아이언맨 시리즈만 총 180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았고 마블 히어로가 총출동하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이언맨. /사진=뉴시스 DB
아이언맨. /사진=뉴시스 DB

마블 슈퍼 히어로를 활용한 상품도 불티나게 팔린다.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 입점한 마블 스토어에서는 아이언맨과 헐크 등을 이용한 1400여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어 ‘키덜트의 성지’로 불린다. 특히 실물 4분의1 크기인 아이언맨 피규어는 90만원의 고가지만 50일 만에 42개가 팔릴 정도. 미국 대공황 시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담겼던 마블의 만화 캐릭터가 영화, 드라마, 캐릭터산업으로 파고들며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허영만의 만화를 영화로 제작한 <타짜>가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4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또 <식객>, <비트> 등도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웹툰작가 강풀의 <아파트>, <순정만화> 역시 영화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생. /사진=머니투데이 DB
미생. /사진=머니투데이 DB

◆전국 ‘장그래’ 울린 캐릭터 장그래
여러 인물 군상을 통해 직장인의 애환을 도닥였던 웹툰 <미생>은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미생>은 만화가 윤태호의 작품으로 2012년 ‘다음웹툰’에서 연재를 시작, 책으로 출시된 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미생>은 프로바둑기사 준비생이었던 주인공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두고 비
정규직으로 입사해 겪는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다뤘다. 특히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등 수많은 명대사를 탄생시키며 시청자를 울고 웃게 만들었다.

드라마판 <미생>이 방영된 이후 취준생, 비정규직 등 현실에 치이는 청년들은 장그래로 불리기 시작했고 직장인들은 스스로를 ‘미생’으로 칭하며 고달픈 현실을 비유했다. 드라마의 인기는 원작 만화 단행본과 VOD 판매 증가를 이끌었고 드라마 판권 구입과 리메이크 러브콜이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그야말로 콘텐츠의 선순환이 이뤄졌다.

<미생> 외에도 과거 <풀하우스>, <궁> 등이 만화 원작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웹툰 <치즈인더트랩>, <운빨 로맨스> 등이 드라마로 제작돼 안방을 점령했다. 웹툰업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가 최근 가장 눈여겨보는 시장이 바로 웹툰”이라면서 “웹툰은 독자들의 접근이 쉬워 흥행 여부를 미리 점치기 쉬운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갓오브하이스쿨. /사진제공=NHN엔터
갓오브하이스쿨. /사진제공=NHN엔터

◆만화·웹툰 IP 활용한 게임 ‘러시’
만화와 웹툰을 주목하는 또 다른 시장은 게임업계. 국내 만화는 1999년 ‘리니지’의 성공으로 게임제작이 본격화됐다.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 초기설정을 채택한 이 게임은 15개월 만에 최초로 100만 회원 온라인게임 시대를 열었고 이른바 ‘리니지 폐인’을 양산하며 게임의 역사를 기록했다. 

웹툰도 게임산업에서 적극 활용된다. 네이버웹툰 <갓오브하이스쿨>이 대표적 사례. <갓오브하이스쿨>은 현재 와이디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갓오브하이스쿨’과 NHN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2016갓오브하이스쿨 with 네이버웹툰’ 등 2개의 모바일게임으로 재탄생했다. 갓오브하이스쿨은 웹툰의 느낌을 살려 2D 캐릭터로, 2016갓오브하이스쿨 with 네이버웹툰은 8등신 3D 캐릭터로 구현했다.

<갓오브하이스쿨>은 우승하면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는 ‘갓 오브 하이스쿨’(G.O.H)이라는 격투기 대회에 참여한 개성 있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다. 특유의 오글거리는 대사와 과장된 ‘막장 액션’이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유쾌하게 이끌어나간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원작 웹툰의 캐릭터와 호쾌한 액션이 게임에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40년대, 일본은 60년대, 우리나라는 80년대부터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면서 “만화를 최종산출 오락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산업계에서 만화는 시나리오의 원천소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