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디지털화를 맞이한 2000년대 초, 출판만화산업은 사양길로 들어선다. 초고속인터넷 보급으로 불법스캔만화가 유통되며 출판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 것. 침체된 만화계의 구세주는 웹툰(webtoon)이었다. 웹툰의등장으로 만화산업의 헤게모니는 종이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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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서울풍물시장 2층에 조성된 청춘1번가 상점을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
◆취약한 수익구조 탓… 만화계 떠난 작가들
국내 출판만화시장이 축소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꼽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단연 ‘대여점’이 지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만화책시장 확대 측면에서 큰 공을 세운 만화대여점은 오히려 많은 독자에게 ‘만화는 구매하는 것이 아닌 대여하는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줘 결과적으로 판매량을 감소시키는 원흉이 돼버렸다.
일본과 달리 허약한 저작권 인식도 시장축소에 한몫했다. 국내 대여점이 A만화를 대여했을 때 저작자나 출판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0’원이다. 일본은 만화 대여 시 출판사나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 배분체계가 안정적으로 갖춰졌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자연스레 만화작가 자체를 희망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1980~1990년대 만화가는 아이들이 꿈꾸는 희망직업 톱5에 꾸준히 들 정도로 인기 직종이었다. 하지만 만화작가 100명 중 1명만 돈을 벌 수 있는 취약한 수익구조 탓에 인기만화가 이외의 무명만화가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화계를 떠났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갖춰지지 못한 것. 같은 시기 일본은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 재기 넘치는 작품들이 쏟아지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만화대국’이 됐다.
인터넷의 발달은 출판만화시장을 더욱 위축시켰다. 불법스캔본으로 만화를 다운로드해 보는 문화가 퍼져 판매량은 바닥을 쳤다. 때마침 1997년 ‘청소년 보호법’이 발동되며 일부 만화가 유해매체로 선정돼 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만화산업은 그야말로 명맥만 유지하며 2000년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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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산업 혁명의 시작, ‘무료’로 연재된 웹툰
국내 만화산업의 변신은 2000년대 초에 시작된다. 일부 포털사이트들이 웹툰을 무료로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 특히 당시 ‘네이버’보다 영향력이 컸던 포털 ‘다음’이 무료로 웹툰 연재 서비스를 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터넷 이용자의 증가와 함께 웹툰은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볼 수 있는 쉬운 접근성과 무료 혜택으로 이용자들을 공략해 나갔다.
하지만 초기부터 웹툰이 황금알사업으로 각광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형포털들이 웹툰을 무료로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전문작가의 부족으로 인기작품이 나오지 않으면서 화제성은 미약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아마추어 작가들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습작을 올리는 정도로만 웹툰을 그렸고 실제 전업작가가 웹툰을 연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웹툰작가 중 한명인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도 네이버웹툰 연재 대신 부동산 만화 연재를 고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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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작가, 미생10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
이후 강풀, 윤태호 등 인기웹툰작가의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큰 인기를 누리며 웹툰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시장 초기, 인기작가들의 히트작이 웹툰 자체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성공하며 국내 만화산업의 당당한 한축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 또한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보급은 성장하는 웹툰시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웹툰시장의 규모는 2347억원으로 2014년 1718억원에 비해 약 36% 성장했다. 웹툰에서 파생된 영화나 드라마, 다양한 캐릭터사업 매출까지 더하면 시장 규모는 5000억원대로 커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포털사이트가 무료로 웹툰을 서비스하는 시도는 전세계중 한국에서만 진행된 파격적인 실험이었다”면서 “이 시도가 대한민국 만화산업의 패러다임
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만화가와 출판사로 대표되던 만화시장은 웹툰만화작가를 다수 보유한 웹툰
기획사가 등장하며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웹툰기획사는 단순히 만화를 만들고 연재하는 기능과 함께 사내 홈페이지나 신문에 실릴 기획 만화콘텐츠를 다양하게 공급하는 ‘웹툰개발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업체로는 네이버웹툰, 다음웹툰, 레진코믹스, 탑툰 등이 있으며 이들은 웹툰 콘텐츠를 바탕으로 드라마, 영화, 게임 등 2차 저작물 생산으로 새로운 수익창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레진엔터테인먼트의 레진코믹스는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을 깨고 부분유료화 사업모델을 만들어 서비스 첫달 손익 분기점을 넘었고 이후 매달 20~40%씩 성장세를 유지하며 안드로이드폰 국내 만화부문 매출 1위를 달린다.
웹툰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며 업계 원고료도 주목받았다. 네이버의 경우 인기웹툰작가는 원고료가 500만원, 신인작가에게도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광고료까지 합치면 인기작가들은 월 10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A웹툰업체 관계자는 “대형포털에 연재되는 인기웹툰작가의 경우 연봉이 억대”라면서 “‘만화가는 배고프다’라는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웹툰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화가라는 직업이 최소한 ‘먹고살 수 있을까’를 떠나 ‘돈을 꽤 벌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바뀐 부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만화계를 떠나려던 작가들도 수익이 보장되면 떠나지 않는다. 풍부한 작가 인프라는 곧 질 높은 웹툰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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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포털 품은 웹툰, 불균형 해소 관건
2005년만해도 네이버웹툰 1일 이용자는 1만여명에 그쳤으나 지금은 하루에 620여만명이 이용한다. 레진코믹스나 피너툰 같은 웹툰 플랫폼들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웹툰시장이 성장세를 거듭하지만 문제점도 노출된다. 대형포털을 중심으로 성장해 발생한 업체 간 불균형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포털중심으로 웹툰시장이 재편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업체들이 성인물 등 마이너 콘텐츠제작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면서 “이는 유료콘텐츠를 구매하는 계층인 성인층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이다. 당연히 아동층이 볼 만한 유익한 웹툰 콘텐츠제작은 소홀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네이버나 다음 등 대형포털들에 젊은 작가가 몰리는 것도 문제”라면서 “대형포털이 중소업체들과 상생해나가는 협력기반의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웹툰시장은 이제 양적성장과 질적성장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다. 더 높은 수익창출을 위해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웹툰업계지만 안정적 작가 수급과 균형적인 시장 발전 등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해외시장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긴 힘들다. 내부적인 자생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업체, 그리고 독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