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사면 뭐하냐고요. 금방 커버리는데.”
아기를 업은 한 젊은 여성이 카운터 앞에서 푸념 섞인 말을 내뱉는다. 그러자 직원이 “그러게요. 박스째로 이렇게 싸게 파는 곳이 없잖아요”라고 받아친다.
지난 10월18일 찾은 용인의 한 리퍼브 매장. 아기띠를 둘러멘 젊은 여성, 이제 막 걸음을 뗀 아기를 데리고 온 여성들이 급하게 매장으로 들어선다. 이들의 목적은 보그스(BOGS) 아기부츠. ‘지역 맘카페’에 리퍼제품이 박스째 입고됐다는 글을 보고 아침부터 달려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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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리퍼브 매장 반품세일닷컴. /사진=진현진 기자 |
◆반값 이하 리퍼브 매장, 대량구매로 이어져
리퍼브(Refurb) 매장은 초기불량으로 반품된 제품이나 고장난 제품을 수리해 다시 내놓는 리퍼제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기능과 성능이 새 제품과 차이가 없지만 가격은 30~80% 저렴해 알뜰 구매족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날 찾은 리퍼브 매장 ‘반품세일닷컴’ 역시 평일 오전임에도 방문자가 적지 않았다. 15개월 된 아기를 안고 온 류기욱씨(33·여)는 “아기 부츠를 싸게 판다는 글을 보고 처음으로 방문했다”며 상자를 뒤적였다. 해당 제품은 백화점에서 8만원대에 판매되지만 이곳에서는 2만5000원으로 반값도 안된다. 박스만 낡았을 뿐 한번도 신지 않은 새 제품이다.
꼼꼼히 부츠를 고르던 류씨는 전화를 걸어 “보라색밖에 없어. 사이즈가 뭐라고?”라며 다른 아기의 부츠도 고르기 시작했고 옆에서 사이즈를 살피던 한 여성은 아이의 발에 직접 부츠를 신기며 제품을 골랐다. 이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말은 “진짜 싸다”. 하나는 기본이고 아이가 크면 신기기 위해 좀 더 큰 사이즈의 부츠도 구매했다. 류씨는 “한번 더 오고 싶다. 완전 ‘꿀템’이다”며 계산 후에도 다른 상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리퍼브 매장에서는 계산하는 도중에도 이리저리 다른 물건을 뒤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상품을 ‘득템’하기 위해서다. 이날 에어 프라이어를 구매하러 방문한 박명희씨(59·여) 역시 계산을 기다리면서 연신 진열대에 전시된 등산복을 들었다 놓고 계산대 위에 놓인 장갑도 살폈다. 박씨는 “가전제품을 살 때 여기서 산다”며 “백화점에서 살 때는 다른 상품이랑 묶어서 비싸게 파는데 그렇게 살 필요 없다. 사려는 제품을 생각해뒀다가 여기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 전시된 상품은 1000여종. 특히 밥솥과 면도기 등 소형가전제품류가 많다.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어 제조사가 ‘등급품’으로 분류한 상품, 박스만 개봉됐던 반품상품, 이월상품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TV는 찾는 고객이 많아 새 상품이지만 저렴하게 판다. 매장 관계자는 “박스만 개봉했던 반품상품이 가장 할인 폭이 크다”며 “주방용품이나 아기 장난감, 온수매트 등 계절용품, 밥솥 등이 베스트셀러”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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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리퍼브 매장 반품세일닷컴. /사진=진현진 기자 |
◆다양한 품목, 단골 발길 잡는다
근처의 또 다른 리퍼브 매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리퍼브 매장만 10여년 넘게 운영해온 대표가 최근 장소를 옮겨 꾸린 곳으로 단골손님의 방문이 잦다. 입구로 들어서자 여행용 캐리어 10여대가 진열돼 있다. 홈쇼핑에서 현재 판매 중인 제품으로 19만원짜리를 6만9000원에, 스크래치가 심한 상품은 3만9000원에 판다.
매장 관계자는 “올해 캐리어만 한주에 100~200개를 팔았다”며 “가장 많이 팔린 주에는 1400개까지 판매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홈쇼핑 시연제품은 방송에서 비닐을 벗기고 올라타서 스크래치가 많지만 캐리어는 비행기 한번만 타도 스크래치가 많이 생겨서 리퍼제품도 괜찮다는 소비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 매장에서는 한해 7000여종의 품목이 입고되고 팔린다. 하루 방문자만 200~300명에 달하며 물건을 조달하는 거래처가 200군데를 넘는다. 그래서인지 전시된 품목도 분야별로 다양했다. 330㎡ 규모의 매장에 화장품부터 그릇, 주방용품, 밥솥, 커피메이커, TV, 의류 등 생활에 필요한 제품이 빼곡하다. 평균 할인율은 약 50%다.
수년 전부터 해당 매장을 찾았다는 서경란씨(52·여)는 “다른 리퍼브 매장보다 여기가 제품의 질이 높다”며 “오늘은 프라이팬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씨가 집어 든 프라이팬은 새 상품이지만 50% 이상 할인됐다.
서씨는 그간 리퍼브 매장에서 운동기구, 안마기, 골프용품 등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매번 올 때마다 판매하는 제품이 바뀌어 시간 날 때마다 한번씩 들린다. 그는 “요즘에는 온라인으로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물건을 직접 보고 살 수 있어 리퍼브 매장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리퍼브 매장에는 제품을 꼼꼼히 살피는 소비자가 많다. 등급품은 미세한 스크래치를 확인하고 리퍼제품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한 후 구매를 결정한다. 매장 관계자는 “작동되는지 테스트하고 일주일 안에 이상이 있으면 반품·교환이 가능하다”며 “대리점에서 1년간 무상 AS가 가능한 제품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날 커피메이커 구매를 결정한 김연순씨(59·여)는 “지난번에는 압력밥솥을 구입했는데 문제없이 사용 중이다”며 “대형마트 등의 가격을 알아본 후 오면 확실히 저렴한 걸 알 수 있다. 그냥 오면 모른다”고 강조했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각광받으면서 소비자는 좀 더 싸게 구매하기 위해 발품 혹은 손품을 판다. 그야말로 ‘쇼핑이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그러나 리퍼브 매장을 나서는 이들의 한손에는 원하던 제품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