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두고 결정해야 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이, 정도전은 북악산이 조선 도읍의 주산(主山)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조 이성계의 선택은 북악산이었다. 그 아래 경복궁을 지었다. 이를 중심으로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 남주작(남산) 북현무(북악산)를 정했다. 각각의 산자락에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숭정문(북대문)을 세웠다. 사대문 사이사이 작은 문을 하나씩 지어 ‘사대문 사소문’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이었다. 바로 한양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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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바우길’ 동호회원들이 허창무씨(맨 왼쪽)의 낙산성곽 해설을 들으며 걷고 있다. /사진=서대웅 기자 |
◆일상과 관광의 조화, ‘낙산성곽길’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한 혜화문.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올려다봐야 한다. 언덕에 자리한 것 같지만 실은 낙산 능선을 계곡처럼 파서 대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혜화문과 낙산공원을 잇는 성곽 중 도로 폭만큼이 뚫린 것이다. 혜화문은 사소문 중 하나로 동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있다. 동쪽에 위치해 ‘동소문’이라고도 불린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20분 혜화문을 찾았다. 한 어르신이 문에 걸터앉아 계셨다. 서울시 종로구 한양도성 해설사 허창무씨(77)다. 5분쯤 지나자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멘 어르신 9명이 혜화문으로 올라왔다. 강원도 강릉 도보동호회 ‘바우길’ 회원들이다. 3박4일간 서울도성을 탐방하기 위해 이날 새벽 서울에 왔다고 했다. 혜화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4차선 도로를 건너 성곽으로 향했다.
도로를 건너 계단을 오르니 쭉 뻗은 거대한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3~4층 건물 높이쯤으로 보이는 이 성곽은 낙산공원을 거쳐 동대문까지 이른다. 성벽 아래쪽과 위쪽의 모습은 달랐다. 하층부의 돌은 불규칙적이고 틈 사이사이에 흙이 채워진 반면 상층부는 정제된 네모난 돌이 빈틈없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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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무 한양도성 해설사. /사진=서대웅 기자 |
도성해설사 허씨는 임진왜란과 일제감정기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릉에서 온 김재명씨(56)는 “중축된 돌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며 “대단하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20분쯤 걷자 작은 성곽 아래를 통과하는 작은 문이 나왔다. 두팔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높이는 2m 정도다. ‘암문’이다. 어두울 ‘암’자를 쓴다. 밤에 문을 닫는 사대문·사소문과 달리 암문은 밤에만 열어놨다. 낮에는 성벽처럼 보이게 위장한 후 한밤중에는 각종 물자가 드나들게 했다. 이런 암문은 성곽 곳곳에 있다.
암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서자 낙산공원이 펼쳐졌다. 주민들이 한켠에 자리한 운동기구를 이용 중이었다. 인근 유치원에서 산책 나온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뛰놀았다. 한 외국인 부부는 동호회 회원에게 남산타워가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사는 이혜순씨(59)는 “성곽을 걸으며 서울이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 1977년 서울에 왔다는 이씨는 당시의 서울을 ‘누랬다’고 표현했다. 공기는 깨끗하지 않았고 한강물은 부유물이 많아 탁했다는 것. 나이 먹으면 물도 공기도 깨끗한 시골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는 이씨가 서울에 매력을 느낀 건 10년 전 성곽길을 걸으면서다. 그는 “성곽길을 걸으면 서울이 참 작은 곳이라는 걸 느껴요. 마음에 품어져요”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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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벽화마을. 낙산공원을 지나 동대문 방향 성곽길을 걸으면 오른편으로 보인다. /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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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흥인지문(동대문)이 나온다. /사진=서대웅 기자 |
바깥에 우레탄을 깔고 오르막길엔 나무계단을 설치한 낙성성곽길의 개축된 모습을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바우길 회원 진혜성씨(64)는 “걷기에는 역시 흙길이 좋다”며 “인공길은 밟는 부분이 다 똑같다. 자연길은 돌길이더라도 발 닿는 부분이 다 다르다. 계단이 불규칙적이면 또 어떠냐”고 말했다.
낙산공원을 지나 동대문쪽으로 향하는 길. 오른편으로 아기자기한 지붕과 함께 상큼해 보이는 카페가 눈에 띈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작은 골목이 이어진다. 이화벽화마을이다. 중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보다 눈에 담기, ‘북악산성곽길’
이날 낮 12시10분. 숙정문(북대문)과 창의문(북소문)을 잇는 북악산 코스를 탐방하기 위해 와룡공원을 찾았다.
북악산 코스는 말바위 안내소부터 시작된다. 안내소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을 반드시 걸어야 한다. 산 중턱에 위치해서다. 차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말바위안내소와 혜화문 중간쯤에 위치한 와룡공원이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 따르면 혜화문에서 말바위안내소까지의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그러나 기자는 와룡공원에서 안내소까지 가는 데만 50분이나 걸렸다. ‘늦가을’이라며 한껏 추워진 날씨였지만 윗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반바지와 맨팔셔츠를 입고 트레킹 중인 외국인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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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안내소 가는 길. 북악성곽 옆으로 걸어야 한다. /사진=서대웅 기자 |
안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역사탐방 안내가 시작되는 2시까지 기다렸더니 해설사와 1대1로 탐방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안내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 2번 진행된다.
안내소를 지나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성곽 곳곳의 경계초소에서 근무 중인 군인들이다. 탐방안내를 도운 한국문화재재단 북악산 한양도성 선임직원 문지환씨(32)는 “북악산 성곽은 조선 중기 이후 훈련도감 소속 병사들이 지켰다”며 “현재도 군사구역”이라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됐고 사진촬영구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CCTV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기자가 촬영제한구역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관할 중대장이 기자에게 다가와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 신분확인을 받아야 했던 것도, 기자 앞에 있던 외국인이 여권은 물론 투숙 중인 호텔의 방 번호까지 말해야 했던 상황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다소 불편한 탐방이지만 문 해설사는 “이곳을 걸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했다. 북악산 코스가 일반인에 개방된 게 2006년이라는 것. 창의문(북소문)에서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인왕산 코스도 1993년 개방됐다.
북악산 코스가 지금껏 개방되지 못했던 이유는 ‘1.21 소나무’가 증명했다. 1968년 1월21일 터졌던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다. 청와대로 침투하던 김신조 등 북한 특작부대원 31명이 이 소나무 인근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소나무엔 지금도 당시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 당시 김신조를 제외한 나머지 북한 특작부대원이 모두 사살된 배경에 대해 문 해설사는 “한밤중에 도주하던 북한군이 도성에 가로막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이곳 북악성곽에도 곳곳에 암문이 있었지만 북한군이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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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공원에서 만난 김혜성·홍다혜씨. /사진=서대웅 기자 |
사실 북악산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를 풍긴다. 서울 세종대로사거리 광화문광장에서 바라보면 사주경계 중인 이순신 동상이 가로막는 듯하다. 이를 넘으면 거대한 광화문 성벽이 서 있다. 그 뒤 11시 방향 청와대 기와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은 마치 산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압박을 준다.
이런 느낌은 ‘청운대’에 오르면 더욱 선명해진다. 해발 293m에 불과하지만 ‘구름이 머물다간 자리’란 뜻인 청운대는 경복궁과 광화문, 육조대로(세종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아쉽게도 이곳은 사진촬영금지구역이다.
기자가 찾은 한양도성은 여러 얼굴을 가졌다. 누군가에겐 일상적인 산책길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트레킹 장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군 근무부대다. 밤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변하기도 한다.
성곽길 주변도 다채롭다. 낙산성곽길 옆 이화동·충신동은 물론 창의문 인근의 부암동 등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전날 밤 낙산공원에서 만난 김혜성(24)·홍다혜(23)씨는 “데이트 장소로 이곳을 왕왕 찾는다”며 “이곳에 오면 왠지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