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맥스크루즈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 맥스크루즈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요즘 출시되는 SUV(Sport Utility Vehicle)는 험로주행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른바 군용 ‘짚차’처럼 투박한 생김새를 버리고 세단 수준의 편안함과 스타일을 갖췄다. 게다가 온갖 안전·편의품목으로 무장하며 ‘다목적차'(MPV)로 거듭나고 있다.
1996년 12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서는 ‘짚형’을 ‘다목적형’으로 바꾸고 세부기준도 생겼다. 다목적형 승용자동차는 “후레임형이거나 4륜구동장치 또는 차동제한장치를 탑재하는 등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자동차로서 일반형 및 승용겸화물이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험로에서의 운행안정성이 보장된다면 다목적차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신형 SUV를 살펴보면 4륜구동장치와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지상고가 높은) 점을 제외하면 프레임바디나 차동제한장치(LSD)를 적용한 차종을 찾기 어렵다. 이는 소비자들의 요구 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캠핑이나 다양한 레저활동을 즐기러 갈 때의 비포장길이나 눈길, 빗길 등 미끄러운 노면에서 불안함을 덜어주면 그만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짐을 효율적으로 실을 수 있으면서 다양한 용도로 편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예전과 달리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진 배경이다. 


bmw x5 /사진=BMW제공
bmw x5 /사진=BMW제공

◆사라진 LSD
자동차에는 엔진의 동력을 필요로 하는 좌우 구동 바퀴에 힘을 더 전달하는 차동장치(Differential Gear)가 있다. 차가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보정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한쪽 바퀴가 모래나 눈에 빠졌을 땐 오히려 탈출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차동을 제한(limited)함으로써 한쪽 바퀴가 헛돌더라도 다른 바퀴의 접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 장치가 LSD(Limited Slip Differential)다.

그런데 요즘 출시되는 자동차엔 LSD가 달려있지 않다.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된 이후 자동차제조사들은 전자식 차체 제어장치(ESP, ESC, VDC등)로 LSD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2012년부터 전자식 차체 제어장치의 의무탑재가 예고된 만큼 국토해양부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후 LSD 의무탑재조항이 완화되며 국내진출을 꺼렸던 수입SUV들이 대거 출시되기도 했다. 물론 일반 소비자는 이런 내용을 알 턱이 없다.

차를 만드는 입장에선 20만원(당시 국산차 탑재 제조원가 기준)에 달하는 10kg짜리 쇳덩이인 LSD를 탑재하는 건 큰 손해다. 작동 소음과 매끄럽지 못한 스티어링휠 조작감은 소비자의 몫이다. 따라서 오프로드용 4WD 자동차나 레이싱카를 제외하면 LSD를 쓰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엔진의 동력을 이용해 위기를 탈출하는 LSD와 힘을 빼 위험을 줄이는 ESP의 작동방식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요즘엔 다양한 알고리즘을 보완해 전자식 LSD가 주행성능을 보완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너를 돌 때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조절해주면 안정감이 높아진다. 볼보 S60 폴스타. /사진=볼보자동차 제공
코너를 돌 때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조절해주면 안정감이 높아진다. 볼보 S60 폴스타. /사진=볼보자동차 제공

◆똑똑해진 전자식 제어장치
최근엔 다양한 제어기술이 개발되며 예전의 기계식 장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바퀴의 구동력과 제동력을 적절히 활용해 최대한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다.

네 바퀴에 구동력을 배분해 주행하는 4WD도 앞-뒤 구동력 제어에서 앞-뒤-좌-우 각 바퀴에 필요한 만큼 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아예 힘을 빼거나 한 바퀴에 힘을 몰아줄 수도 있다. 여러 상황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센서가 보내는 상황을 조합해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 해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차종에 따라 네 바퀴 구동력 배분을 막아 접지력을 극대화하는 기능을 갖추고, 이런 기능이 탑재되지 않았을 땐 전자제어장치를 끔으로써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전자식 차체제어장치를 온-로드용으로 발전시키면 주행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폭스바겐 XDS, 볼보 CTC 등이 좋은 예다. 코너를 돌 때 힘이 더 필요한 바퀴에만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코너링 시 접지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결국 제조사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의 달라진 성향이 잘 맞아떨어지며 기계식을 전자식으로 대신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