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는 <인구론>을 집필했다. 그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인류는 결국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암울한 미래를 예측했다. 산술급수는 2, 4, 6, 8, 10…처럼 덧셈으로 늘어나고 기하급수는 2, 4, 8, 16, 32…처럼 곱셈으로 늘어나니 전제가 맞다면 멜서스의 예측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위의 두 수열을 보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얇은 신문지를 절반으로 접으면 두께는 두 배가 된다. 신문지를 계속 접으면 전체 두께는 곱셈으로 늘어난다. 신문지 한 장의 두께가 0.1㎜라고 했을 때 신문지를 42번 접고 위에 올라서면 머리가 달에 닿는다. 조금 더 접어 69번이 되면 지구에서 4.2광년 떨어진 센타우르스자리 별 프록시마에 닿고 88번 접으면 250만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 도달한다. 은하철도 999도 필요 없이 신문지만 접으면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만 수학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는 논리적인 귀결이다. 물론 신문지를 88번 접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문지를 펼쳐놓고 재면 긴 쪽이 80㎝정도다. 신문지를 33번 접으면 이제 원자 하나를 반으로 접어야 되니 물리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맬서스의 시대보다 200년이 더 지난 현재, 인류의 삶은 적어도 물질적인 면에서 훨씬 풍족해졌다. 맬서스의 예측이 틀린 이유는 그가 사용한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맞지만 인류의 생산력이 산술급수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인구증가보다 더 빨리 성장했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물질적인 삶이 향상된 것이다. 그러나 생산력의 기하급수적 팽창이 계속될지 의심스럽다.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빠른 성장이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다.

소자에 들어있는 원자의 숫자를 개략적으로 계산해보면 현재의 반도체 집적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만약 위의 예측이

[청계광장] 산술급수의 미래 경제
계속된다면 오래지 않아 원자 하나가 감당해야 할 상태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소자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생산력 증가는 산술급수의 꼴로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류가 빈곤해질 일은 없다. 인구의 증가도 결국 산술급수의 꼴로 느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처럼 모든 것을 ‘율’로 재는 것은 기하급수적인 증가에만 맞는 사고방식이다. 아마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를, 모든 것이 산술급수적으로 느리게 증가하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준비가 이제 필요하지 않을까. 빨리 간다고 행복할 것도, 느리게 간다고 불행할 것도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