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난공불락’ 로체남벽 ‘4전5기’ 홍성택 대장
“희생이 있는 등반은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산은 늘 거기 있기 때문에 다시 오면 된다.”

살을 에는 강풍은 어마어마했다. 2015년 정상까지 300m를 앞두고 홍성택 대장(사진·50·내셔널지오그래픽)은 히밀라야 로체(8518m) 남벽 수직빙벽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강풍에 속수무책이었다. 먼 발치 수직빙벽에 파놓은 캠프 2와 3가 통째로 사라졌다. 정상에 오른 뒤 1~2박을 해야 살아 돌아갈, 식량과 장비를 묻어 둔 캠프가 날아갔다.
“무리했으면 오를 수 있는 거리인데, 올랐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나 아니면 셰르파, 또는 둘 모두의 희생과 맞바꾼 남벽 초등은 의미가 없어요.”

인류에게 첫 발을 허용하지 않은, 난공불락의 로체 남벽. 정상까지 3300m 수직빙벽을 타고 오르는 남벽 로체 등정은 히말라야 14좌 첫 완등자인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가 ‘21세기에나 오를 수 있을 것’이라며 꿈을 접었을 정도다.


다른 루트로 로체 정상을 밟았던 예지 쿠쿠츠카(폴란드)는 세계 2번째로 14좌 완등을 마친 뒤 1989년 남벽 8300m 지점에서 추락사했다. 쿠쿠츠카는 14좌 중 9곳을 신루트를 개척해 올랐고 4곳을 동계에 정복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동계올림픽 특별 금메달 수상을 제의했던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히말라야 로체 남벽. 수직빙벽 3300m를 타고 올라야 정상에 이른다. /사진제공=홍성택 대장
히말라야 로체 남벽. 수직빙벽 3300m를 타고 올라야 정상에 이른다. /사진제공=홍성택 대장
◆14좌 완등 이상의 로체남벽 초등…세계 산악계 ‘4전5기’ 홍 대장 주목

그런 까닭에 로체 남벽 초등을 14좌 완등 이상의 의미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낙석과 강풍에 맞서며 3300m의 수직빙벽에 길을 내며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산악계가 내년 4월 로체 남벽에 다섯 번째 도전하는 홍 대장을 주목하고 있다.


먼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15년 홍 대장의 네 번째 로체 남벽 등반기에 감탄해 그를 아시아 대표 탐험가(National Geographic Asia Grantee of 2016)로 선정했다. 한국인 탐험가와 산악인 중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은 홍 대장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NGC)이 홍 대장의 이번 등반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TV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겠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등정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NGC 측은 성공할 경우 전세계 최고 산악인에게 주어지는 황금피켈상이 한국인 최초로 홍 대장 몫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쿠(优酷)도 홍 대장의 등정기를 실시간으로 다룰 예정이다. 중국의 유명 산악인인 손위첸이 원정대에 합류해 현장 소식을 전한다. 손위첸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에베레스트(8848m) 정상 성화봉송 산악인이다.

또 스페인의 유명 산악인이 발벗고 나선다. 해외채널을 통해 홍 대장의 원정 소식을 접한 그가 직접 홍 대장에게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로체 남벽 초등의 신기원이 다양한 경로로 전세계에 알려지는 셈이다.

◆베링해와 안나푸르나, 시·공간 간극을 메울 약속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홍 대장은 5극지를 세계 최초로 정복했다. 5극지는 남극, 북극, 에베레스트(이상 3극점), 그린란드(북극권), 베링해협으로 홍 대장은 2012년 마지막 관문인 베링해협을 도보횡단한 뒤 2013년 저서 ‘5극지(아무도 밟지 않은 땅)’를 썼다.

그런 그가 로체 남벽에 다섯 번째 도전한다.

“결자해지예요. 2011년 영석(고 박영석 대장) 형과 안나푸르나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민(고 신동민 대원)이와의 약속입니다. 당시 베링해협을 준비하고 있었고 내가 횡단을 마치고 동민이가 안나푸르나에서 돌아오면 함께 남벽을 가자던 말이 잊히질 않아요.”

간다 하면 어딘들 따라붙었다는 고 신동민 대원. 홍 대장은 2000년 훈련 캠프에서 맺은 인연을 안나푸르나에 묻어야 했다.

“믿음이 강한 친구였어요. 어렵사리 동민이게 회사 일자리를 소개해줬더니 산에 간다고 하니까 사표를 쓰고 나온 겁니다. 2011년 로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새로 소개해준 회사에 또 사표를 쓰고 함께한다는 거예요. 그게 동민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베링해협과 안나푸르나, 고 신 대원과 시·공간을 달리했던 홍 대장이 로체 남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 도전을 과감히 접었습니다. 지난 4번의 경험에서 가능성도 충분히 봤습니다. 더구나 안타까운 희생이 따랐던, 가슴 아픈 도전을 숱하게 봤습니다. 저에게도 영민이에게도 모든 가족에게도 남벽에서 멀쩡히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홍 대장에겐 산악인이나 탐험가가 자신의 이름 앞에 응당 붙이고 싶을 ‘최초’와 같은 수식어가 다소 무색해 보인다.   

◆마지막 도전… “성패의 경험, 후배 산악인과 나눌 것”

홍 대장은 2007년 두 번째 등반을 앞두고 2006년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2000년부터 로체 남벽을 네 번이나 도전했던 일본 산악인 오사무 다나베 대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사무 대장은 로체 남벽 캠프4에서 정상 공격을 시도한 입지전적인 산악인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2010년 다울라기리1봉(8167m)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오사무 대장이 자신이 설계한 루트를 절대 따라 오르지 말라고 하더군요. 실패한 루트라면서요. 다른 루트를 찾으라고 조언했던 것이 제가 여태껏 도전했던 코스입니다. 또 캠프를 추가해서 구축하라는 점도 강조했어요. 그가 아니었다면 가능성은 고사하고 불귀의 객이 됐겠죠. 성공하라면서 산악인으로서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소중한 정보를 나눠준 고인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오사무 대장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캠프도 4곳으로 확대한 홍 대장은 2015년 정상 300m 지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도전은 산악인으로서 고 신동민 대원뿐 아니라 고 오사무 대장의 염원도 함께하는 것이다.

홍 대장은 캠프를 6곳으로 확대한다. 2곳을 추가한 것인데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자신과 셰르파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수직빙벽을 올라야하는 셰르파들도 엄선했다. 이들은 현지서 고소훈련 등 별도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이번 도전이 마지막입니다. 성패 여부를 떠나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강한 열망이 일 듯이 산에서 들고나감(인 앤 아웃)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돌아와서는 성패의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홍성택 대장(경북 구미 출생, 용인대 유도학과/고려대 체육교육학과(석사))
-2015년 로체 남벽 4차 도전
-2014년 로체 남벽 3차 도전
-2013년 로체 등반
-2012년 베링해협 세계 첫 도보횡단(한국 탐험대상)
-2011년 그린란드 북극권 2500km 종단(한국 탐험대상)
-2008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2007년 로체 남벽 2차 도전, 로체 샤르 등정
-2005년 북극점 스키도보 극점 등정
-2001년 로체샤르 등반
-1999년 로체 남벽 1차 도전
-1996년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라 등반
-1995년 에베레스트 등정, 시샹팡마 등반
-1994년 남극점 스키도보 극점 등정(대한민국 체육포장)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
-1992년 칸뎅그리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