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걸친 구글의 국내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시도가 무산됐다. 국토교통부 소속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11월18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 관계부처로 구성된 지도 국외반출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의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최종 불허했다.
안보와 통상을 놓고 저울질하던 정부는 안보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 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구글의 입장 변화 등으로 재신청이 있을 시 검토할 의사가 있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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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구글 ‘10년의 도전’
구글은 10년간 꾸준히 지도 반출을 요구했다. 지난 2007년 국가정보원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처음으로 요구하고 이듬해 한미통상회의 등에서 “지도 데이터 반출 규제는 외국 IT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국토지리정보원에 재차 지도 데이터 반출을 문의했지만 우리 정부가 요구한 ‘서버설치’ 제안을 거절해 또다시 무산됐다.
구글은 2011년 국내 로펌에 법률 자문을 구하며 가능성을 엿보다 정부가 지도 국외반출협의체에서 심사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하자 올해 6월 정밀지도 반출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축척 5000분의1 정밀지도를 해외에 반출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구글의 첫 공식신청에 정부는 60여일에 걸쳐 논의를 거듭하다 “안보가 중요하지만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당시에도 협의체는 안보를 위해 반출을 불허해야 한다는 의견과 신사업 육성이나 대미 통상마찰 우려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여론 역시 마찬가지. 특히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 제대로 된 세금을 내지 않는 구글이 1조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된 지도 데이터를 사실상 공짜로 얻으려 한다는 점이 부각돼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됐다.
한차례 미뤄진 결정은 최종 결정날인 11월23일보다 빠르게 발표됐다. 정부는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여건에서 안보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 “보완 방안을 제시했으나 구글 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아 최종 불허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타협 거부·거짓으로 반감 산 구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부는 구글에 ▲주요 보안시설에 대한 블러(흐릿한)나 저해상도 처리 ▲‘동해·독도’ 등 우리 측이 제공한 원안대로의 지도 데이터 사용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구글은 본사 정책대로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며 타협안을 거부했다.
먼저 구글은 보안시설에 대한 블러 처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글 외에 위성지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이미 노출하고 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원안대로의 지도 데이터 사용 역시 본사의 정책을 들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국민의 반구글 정서도 정부의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감 현장에서 “구글이 ‘3D 지도, 자동차 길찾기, 도보 길찾기’ 등의 구글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축척 5000분의1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한 것과 다르게 일부지역에서는 2만5000분의1 지도만으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스라엘에서는 블러 처리를, 대만의 남중국해 군사시설에 대해서는 블러 처리 협의 의사를 밝혀 국내와는 다른 이중잣대 논란이 불거졌다. 구글의 거짓말이 세금 회피 문제와 맞물려 국민적 반감을 산 것이다.
최종 결정이 난 후 구글 측은 “구글도 안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며 “앞으로도 관련 법규 내에서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신기술 발전 등에 관한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한국에서도 구글지도 서비스의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간 번 국내기업, 지도서비스 ‘박차’
정부의 결정에 국내 인터넷기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구글 지도서비스가 확대되면 준비 중인 서비스가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 세금 역차별 문제도 이들에겐 억울한 부분이었다.
앞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구글처럼 자금력 있는 회사가 한국에 서버를 두고 지도 서비스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말로, 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사는 “구글도 카카오·네이버 등 다른 업체들과 똑같이 경쟁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심경을 드러낼 정도. 지도 API 무료 사용량을 확대하며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도 단행했다.
최종 불허 결정이 난 후 이들은 “외국어버전 지도를 강화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지도서비스가 구글에 비해 가장 취약하다고 꼽히는 게 바로 외국인의 이용도다. 네이버는 평창동계올림픽 방문객을 목표로 외국어 버전을 개발 중이고 카카오는 다국어 버전 개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밖에도 이들은 지도서비스와 접목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등 지도 서비스 강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상윤 부경대 행정공간정보연구센터 교수는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이 막히면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기술 개발 시간을 벌었다”며 “지도 서비스를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과 융합하는 역량을 키워 국내 시장을 우선 선점하고 구글의 기술력에 도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