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경제위기의 공포가 짙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위기에 이어 내년에는 대내외 불확실성을 동반한 경제위기가 찾아온다는 ‘10년 주기설’이 거론된다.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을 비롯해 세계 경제연구소들은 우리나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2%대로 낮췄다. <머니S>는 국내외 연구기관의 내년도 경제전망을 통해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을 짚어봤다. 또 설문조사를 통해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을 바라보는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1997년 11월21일 밤 10시20분. 김영삼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근로자들은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1990년대 말 한국은 비명을 지르며 외환위기에 맨몸을 갈았다.
그로부터 10여년. 겨우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물어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 파장은 우리에게도 밀려왔고 한국경제는 본격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2017년을 앞둔 지금 다시 ‘10년 주기설’이 나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내년부터 한국에 본격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국내 경제지표에서는 긍정적인 숫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1996~1997년] 대기업 줄도산
IMF 외환위기 징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찾아볼 수 있다. 우선 GDP 성장률이 1996년부터 이상 조짐을 보였다. 1995년 9.6%를 기록했던 성장률이 1996년 7.6%로 낮아졌다. 여기에 한보, 삼미, 진로, 기아, 해태, 뉴코아, 한라 등 굵직굵직한 기업이 줄도산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1996년 8월 이듬해인 1997년 성장률 전망치를 7%로 제시했다. 터무니없는 예상은 빗나갔고 기업의 부실이 이어지면서 1997년 성장률은 5.9%로 떨어졌다. 결국 1999년 재계 3위 대우그룹마저 해체됐다.
또 다른 시그널은 경상수지 기록이다. 1995년 30.3%에 이르렀던 수출증가율이 1996년 3.7%까지 미끄러지면서 경상수지를 끌어내렸다. 이듬해 1996년 경상수지는 238억3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의 미흡한 환율대응도 외환위기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1994년 미국은 3%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995년 2월까지 6%로 올렸고 일본은 엔화절하를 단행했다. 이 같은 대외변수에도 당시 우리 정부는 원화강세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더욱 저하됐고 경상수지는 악화됐다. 결국 1996년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238.9%로 치솟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관리한 법정관리기업의 자산규모는 30조원이었다. 당시 1300여기업이 법정관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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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
2000년 이후 한국경제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다. 국내 GDP 성장률은 2003년 2.9% 저점을 찍고 오름세를 나타냈다. 2006년 5%대로 복귀한 뒤 2007년 5.5%를 기록했다.
경상수지와 외환보유액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경상수지 흑자는 2005년 126억5480만달러에서 2006년 35억6920만달러로 떨어졌지만 2007년 다시 117억9450만달러로 회복됐다. 1996년 332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2006년과 2007년 각각 2389억5611만달러, 2622억2407만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대형투자은행 3곳이 파산했고 세계 최대보험사인 AIG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렇게 금융최강국인 미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에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튄 계기는 세계경제의 변동성 요인인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2004년 12월 1%에 불과했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2006년 6월 5.25%로 치솟았다. 마침내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발생했다. 주택시장 경기가 꺾이고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집값이 곤두박질치자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이 같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여파는 한국 부동산경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2006년 한국의 집값 상승률은 24.8%로 치솟았다. 특히 서울·경기지역의 집값 상승률은 각각 31.11%, 34.8%를 기록하며 부동산시장이 과열됐다. 그러다 미국 금리인상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한국 부동산시장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부동산시장이 붕괴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실물경제도 얼어붙었다.
◆[2017~2018년] 1997년 데자뷔
이후 한국경제는 서서히 성장동력을 잃어갔다. 2014년 3.3%였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6%에 그칠 전망이다. 내년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내년 성장률(전망치)을 2.7%에서 2.4%로 내려 잡았다. 정치 리스크와 대외변수까지 반영될 경우 1%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DP 증가율은 올 3분기까지도 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9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생산(-0.8%), 소비(-4.5%), 투자(-2.1%) 모두 마이너스다. 같은 기간 제조업가동률(71.4%)은 9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9.3%로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요즘 돌아가는 국내 상황은 1996~1997년과 가장 비슷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2년을 기점으로 산업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조선업과 건설업, 해운업 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내 산업계의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마저도 휘청거린다.
올 들어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은 1150곳으로 사상 최대다. 법정관리 신청기업은 조선, 해운, 건설 등에서 전자·통신, 유통·패션, 식음료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 내 법정관리기업이 2000개까지 불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부진한 것도 위기설의 배경이다. 수출은 올 8월을 제외하고 21개월 연속 감소했다. 대외적으로는 그간 경기부양을 위해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섰던 미국이 돈줄을 조이려는 분위기다.
김성태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내년 미국 추가 금리인상이 예견되는 가운데 중국 성장률 급락 등 대외여건이 급변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내년 이후를 대비하는 재정 및 통화정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