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빅3 중 누가 먼저 백기를 들지 관심을 갖는다. 한곳에서 백기를 들면 빅3 공동전선은 무너진다. 빅3 모두 겉으로는 ‘고심 중’이라면서도 속으로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사유를 최대한 부각시켜 무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금감원 역시 영업권 반납과 대표 해임 권고가 포함된 초강수 제재안을 꺼내 들며 벼르고 있다.
언젠가부터 자살보험금 논란이 대형 3사와 당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부각됐다. 소비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창(당국)과 방패(보험사)의 치열한 기싸움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자살보험금 논란의 근본적 원인은 과거 보험사가 줄줄이 베껴 쓴 약관에 있다.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이후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이 담긴 이 상품은 금감원의 ‘도장’을 받고 2001년부터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보험사와 대치하며 마치 소비자편인 듯 보이지만 사실 금감원도 자살보험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끌어온 자살보험금 지급문제가 지난 5월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로 결론이 나는 듯했다. 이때 보험사들이 꺼내 든 카드는 ‘소멸시효’였다. 여기에 경영진의 배임 소지가 있다는 논리를 새롭게 추가하며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 10월 대법원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날부터 2년이 지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여론은 보험사에 싸늘하다. 고객의 계약위반 여부는 꼼꼼하게 따지는 보험사가 정작 유가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은근슬쩍 약관을 무시한 채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했기 때문이다. 재해사망에 해당되는지 모르고 일반사망보험금만 받았던 유가족은 보험금을 청구할 시효가 지났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려웠다. 유가족이 공동으로 자살보험금 청구소송을 낸 건에 대해 보험사들은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다.
이번엔 소명자료 제출까지 미루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가 소멸시효 논리를 펴는 것은 어폐가 있다. 배임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 |
본질은 ‘약관(약속)대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느냐’다. 누구의 논리가 맞느냐가 아니다. 수년간 보험사와 금감원이 날 선 각을 세우며 시간을 끄는 동안 유가족의 상처는 곪을대로 곪았고 이는 보험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갉아먹었다. 보험업의 기본은 신뢰다. 상대방의 책임을 묻기 전에 고객과의 약속부터 지킨 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보험금을 받는 자는 금감원이 아닌 고객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