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체질개선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 곳곳에서 의문이 흘러나온다. 조선·해운과 달리 비강제적인 데다 정부의 대책이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려워서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과잉공급과 각국의 무역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업종인 만큼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 당시 정부는 ‘범용 철강재 강국’에서 ‘고부가 철강재와 경량소재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포스코 전기강판. /사진제공=포스코
포스코 전기강판. /사진제공=포스코

◆체질개선 왜 절실한가
글로벌 철강산업은 수요보다 생산이 많은 ‘과잉공급’ 상태로 수년을 버텨왔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철강재 최대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입장이 바뀌면서 가격경쟁이 본격화됐다.

과잉공급 상황임에도 중국을 비롯한 각국 업체는 생산량을 줄이기보다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유지했다. 제값을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의 범람으로 시장가격이 흔들렸고 세계 철강업계는 저가제품으로 곤혹을 치렀다.


물론 이는 건설용 형강과 조선용 후판 등 중국업체가 주력하는 일부 품목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높은 수준의 품질이 요구되는 자동차용 강판을 비롯한 판재류는 주로 주문생산방식이어서 생산량이 판매량과 거의 비슷해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정부의 경쟁력 강화방안의 바탕이 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컨설팅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5대 핵심전략은 ▲친환경 및 정보기술(IT)화를 통한 설비경쟁력 강화 ▲경쟁우위 품목의 인수합병(M&A), 투자확대를 통한 고부가화 유도 ▲경쟁열위·공급과잉 품목에 대한 사업재편 지원 ▲고부가 철강재 및 경량소재 등의 조기개발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과 부적합 철강재 유통 방지 등이다.

◆정책발표 후 달라진 점은


정부는 최근 석유화학·조선기자재·철강·섬유·태양광셀·농기계 등 다양한 업종에서 15개 기업의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했다. 이를 두고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에 비해 기업활력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승인 추세가 빠른 것으로 평가했다.

‘기업활력법’은 과잉공급분야 기업이 생산성을 높여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재편을 추진할 경우 각종 특례를 부여하는 법이다. 기업이 각종 특례를 지원받기 위해 생산성 목표 등을 포함한 사업재편계획을 주무부처에 제출하면 주무부처가 이 계획의 생산성 향상, 투자·고용 창출 효과 등을 검토한 후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승인한다.

철강업종에서는 하이스틸·동국제강·현대제철·우신에이펙 등 4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철강부문의 후판(동국제강), 강관(하이스틸)과 전기로(현대제철) 등 설비중심으로 사업재편을 추진했다.

지난해 11월9일 포스코는 조선업종 불황으로 수요가 줄어든 후판 1개 라인(총 4개 라인) 가동중단을 검토했다. 동국제강은 180만톤 규모의 포항 제2후판 공장설비를 매각하고 대신 컬러강판설비를 10만톤 늘리는 계획을 같은 달 22일 승인받았다. 현대제철도 지난해 12월6일 단강 제조용 전기로(20만톤 규모)를 매각하고 순천의 고부가 단조제품 설비에 투자하는 방안이 통과됐다.


냉연코일 자동차강판. /사진제공=포스코
냉연코일 자동차강판. /사진제공=포스코

◆눈치보는 기업들
정부는 ‘철강 및 석유화학산업 경쟁력강화방안’에서 제시한 큰 그림 아래 업계의 사업재편을 독려 중이다. 문제는 정부가 기업활력법을 통한 지원계획을 공개했음에도 생각보다 기업들의 움직임이 크지 않다는 것. 이유는 크게 4가지다.


먼저 업계상황이 다르다. 조선·해운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을 생각하기 쉽지만 철강은 가격불안정으로 시장이 주춤했을 뿐이다. 결국 기업은 불필요한 부분만 덜어내면 끝이라는 입장.

게다가 업계 관계자들은 무조건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당장은 시장이 어려워 설비를 감축하는 게 이득일 수 있지만 시장이 다시 호황일 때 대응하기가 어려워서다. 게다가 현재 철강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중이고 건설 등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돼 생산을 줄일 이유가 적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그동안 자체적인 체질개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특별히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품생산량을 줄이기보다 불필요한 투자를 접는 방안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

또한 정부가 원하는 고부가품목으로의 전환은 단시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어서 상황을 지켜보며 시장에 대응하면 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필요하면 스스로 나설 것"

철강업계는 결국 각 기업이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개선할 것이라고 본다. 생산과정을 개선하고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라는 시각이다.


대조적으로 정부는 마음이 급하다. 정부는 철강업계에 고부가 철강재 연구개발(R&D) 8개 과제를 제시했고, 타이타늄과 알루미늄 등 경량소재 R&D에 총 510억원을 투자한다. 특히 친환경제조공법인 수소환원제철공법을 개발하는 데 총 1500억원을 쏟는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가격이 오르며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고부가품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걸 기업들이 더욱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