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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헬기사격. 국과수가 37년만에 5·18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5·18기념재단이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당시 촬영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5·18기념재단 제공) |
5·18 당시 헬기사격이 37년만에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 탄흔 분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공식화하고 기총소사(비행체에서 기관총 사격) 가능성도 언급했다.
국과수는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185개 총탄 흔적 최종분석 결과인 법의학 감정 보고서를 어제(12일) 오후 2시쯤 광주시에 제출했다.
국과수는 보고서에서 "헬기가 호버링(hovering·정지) 상태에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계엄군이 1980년 광주항쟁 당시 헬기를 동원해 시민들에게 사격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 것이다.
국과수는 전일빌딩 10층에 위치한 옛 전일방송 내부 기둥과 천장, 바닥, 창틀 등 내부에서 식별 가능한 탄흔이 142개라고 밝혔다. 중복되는 탄흔과 창틀과 천장 사이 나무 마감재에서 발견된 탄흔을 감안할 때 최소 150여개 이상의 탄흔이 있었다. 외벽에서 발견된 탄흔 35개는 구경 5.56㎜ 또는 구경 0.3인치 탄환이 사격되면서 남은 것으로 추정됐다.
또 3차 현장조사 당시 시민이 제출한 5.56㎜ 탄피 2점과 0.3인치 탄피 3점은 생산 시기로 보아 5·18 당시 사용된 실탄의 탄피일 가능성이 인정된다는 감정도 나왔다.
국과수는 이같은 탄흔이 헬기사격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근거도 설명했다. 1980년 5·18 당시 전일방송 전면에는 최소 10층 이상의 건물이 없었고, 옛 전일방송 내부 창틀보다 낮은 지점에서 탄흔이 발견된 것을 고려할 때 높은 고도에서 사격된 총탄이 탄흔을 남겼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탄흔 각도 등을 분석해 "최소 50도 이상 하향 사격의 각도"라고 설명했다. 전일빌딩 10층 위치에서 하향사격을 하려면 헬기 등 비행체에서 사격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국과수는 탄흔만 가지고선 5.56mm 소총탄인지, 대구경인 7.62mm 소총탄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창틀 주변 목재 마감재에서 식별되는 탄흔 크기만 봐서는 M16 소총에 쓰이는 5.56mm 소총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M60 등 기관총을 이용한 기총소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국과수는 5·18 당시 현장 주변을 기동한 헬기는 UH-1 500MD 기종으로, 이 헬기 무장은 7.62㎜의 실탄을 사용하는 M60 계열 기관총이나 M134 미니건 계열 기관총을 사용한다.
탄흔이 흩뿌려지듯 생성된 방향 등을 고려하면 UH-1 헬기의 양쪽 문에 거치된 M60 기관총 사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국과수 판단이다. 단, M134 미니건 계열 기관총은 기체 전면을 향해 고정된 총기로, 발사 속도가 저속 모드에서 분당 2000발 내외이기 때문에 M134 사용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했다.
국과수는 전일방송 공간 천장 부분에 탄환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 탄흔이 발견된다면 사용총기류 규명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추가 조사를 의뢰할 경우 전일방송 공간에 대한 보존 방안을 수립해 발굴 원형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당부했다.
국과수의 이번 보고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여부를 규명하는 최초의 정부 공식 문서가 됐다. 군 당국은 지난 37년 동안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에 대한 수많은 목격자 증언이 있었지만 기총소사 사실을 부인해왔다. 특히 사진 등 증거자료가 없어 광주항쟁 단체 등은 진실규명을 위해 자체 조사에 의존해왔다.
1980년 9월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가 육군본부에 제출한 '광주 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에는 '헬기 능력 및 제한사항을 고려한 항공기 운용' 방식으로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로 고가 운항'이라고 적혀 있다. 연료, 탄약 소모가 많아 비용이 많이 든 헬기 운항 작전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5·18연구소 역시 1980년 5월 계엄군 헬기 발칸포에 1500발이 공급된 후 반납되지 않은 기록, 기관총 1만759발 사용 기록 등을 근거로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해왔다.
한편 광주시는 이번 결과보고에 따라 전일빌딩이 갖는 역사·상징성을 고려해 전일빌딩 내에 추념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도 이번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전일빌딩 원형 보존과 5·18 헬기 사격 진실 규명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정수만 5·18연구소 비상임연구원(전 5·18유족회장)은 "광주 시민들에게 광주 항쟁 때 '헬기 사격'은 36년 동안 기정사실이었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부족했다. 전일빌딩의 탄흔을 시작으로, 계엄군이 5·18 때 광주 시민들을 얼마나 처참하게 학살했는지를 반드시 증명해, 억울한 오월영령들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