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올해 중으로 경북 성주 롯데스카이힐골프장(이하 성주골프장)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그룹 측이 국방부가 제시한 다른 군용지와의 교환을 앞두고 검토할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어서다.

◆국방부-롯데 부지 맞교환 지연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사드부지와 교환 예정인 군용지의 감정평가를 완료하고 교환계약을 위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데 일정에 다소 유동성이 있다”며 “1월 중 체결하려던 교환계획이 약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이어 “일단 정리되면 롯데 측에서 이사회를 열어 최종 감정평가액에 대해 승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아직 이사회가 개최되지 않았다”며 “조만간에 개최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가 주한미군 사드배치 부지로 선정·발표한 롯데상사 소유 경북 성주골프장. /사진=뉴스1
국방부가 주한미군 사드배치 부지로 선정·발표한 롯데상사 소유 경북 성주골프장. /사진=뉴스1

앞서 지난해 11월 국방부와 롯데는 경기도 남양주의 군용지와 성주골프장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주 두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 작업이 끝나 관련된 절차는 거의 완료됐다. 해당 부지를 소유한 롯데상사 이사회에서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부지교환을 승인하기만 하면 사실상 절차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최근 롯데상사 측이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미루면서 이사회 개최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롯데는 안보와 직결된 국가정책을 대놓고 거스를 수는 없지만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강도가 높아지고 있어 중국사업 타격 등을 우려해 이번 거래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지난해 11월 중국정부는 국방부와 롯데가 사드부지와 관련해 합의한 직후 중국 내 롯데 계열사 150여개 전 사업장에 대해 세무조사와 소방·위생 점검 등을 실시했다. 정기 점검이라는 게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사드 배치에 도움을 준 롯데그룹에 대한 보복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중국정부는 연초부터 한류 연예인 출연금지, 한국여행 제한, 한국산 화장품 대거 수입 금지 등 보복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 측이 사드부지를 예정대로 제공할 경우 롯데의 중국사업이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보복·정치 혼란 겹쳐 신중

혼란한 정치 상황도 고민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며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야권에서는 사드 배치를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거나 차기 정권으로 결정을 미루자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소속의원들로 구성된 ‘사드배치 국회비준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국회에서 사드 배치를 논의해야 한다”고 국방부를 압박하고 있고, 유력한 대권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드배치 논의를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업 차질 외에 정치적 문제까지 얽혀 롯데가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얘기다. 

[머니포커S] '사드 딜레마'에 빠진 롯데

이런 가운데 롯데 내부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여건이 아니다. 롯데는 지난해 오너일가가 비자금조성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뒤 신동빈 회장이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대상으로도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성주골프장이 사드부지 후보로 거론됐을 때는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이 검찰조사를 받고 있던 터라 정부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 후 사드 배치에 적극적이었던 정부의 힘이 빠지고 여론도 좋지 않아 롯데 측이 최대한 미루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롯데 입장에서는 부지제공 약속을 물리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이미 정부와 구체적 협상이 진행된 상황에서 되돌리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며 “정권교체 때까지 미루고 싶겠지만 무작정 미루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