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강, 서울역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위치한 삼각지는 도심의 북적임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사람의 흔적이 뜸해 항해 중인 선박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분위기가 황량하다. 그러나 삼각지역 1번 출구 인근 우리은행을 끼고 들어간 대구탕 골목은 역 근처와 달리 사람들로 붐빈다. 서로 원조라고 외치는 낡은 간판들, 칼칼한 국물냄새, 음식을 앞에 두고 탁상공론을 하는 노인들 등 전통의 냄새가 가득하다. 골목 이름처럼 대구탕으로 유명해졌지만 색 다른 손맛이 느껴지는 맛집도 숨어있다.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과 함께 맛의 비결로 손님을 끌어당기는 진짜 원조 맛집들을 찾아가보자.


요리가 있는 집. /사진=임한별 기자
요리가 있는 집. /사진=임한별 기자

◆돌아온 해천탕의 원조 '요리가 있는 집'

동네 횟집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과 단출한 내부가 전부인 이곳은 과거 이태원 해천이 부활한 숨겨진 맛집이다. 해천은 해천탕의 특허를 보유한 제대로 된 전복요리전문점이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채성태 대표의 창의적인 전복요리는 해천을 미식가의 성지로 꼽히게 했다.
하지만 대중이 다가가기엔 문턱이 높았다. 채 대표는 수년간의 고민 끝에 선도 좋은 제철 해산물 요리를 누구나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가격을 대폭 낮추고 위치도 나이 지긋한 아재들의 점심 메카로 꼽히는 대구탕 골목으로 옮기며 상호를 바꿨다.

죽, 회, 찜, 조림, 샐러드 등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한 여러가지 전복요리를 선보이지만 그중에서도 채 대표의 시그니처 메뉴는 단연 생닭과 활전복을 껍질째 넣고 끓인 해천탕이다. 인삼과 엄나무 등 영양 가득한 한약재가 들어가 보양식이 따로 없다.


전복내장무침은 양상추를 전복내장에 무치고 참치액젓, 참기름, 김가루로 간을 한 뒤 버무렸다.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가는 비릴 수 있는 전복내장인데 손질을 섬세하게 해서 그런지 비린맛이 전혀 없고 씹을수록 고소하고 쫄깃하다.

전복을 굴소스로 조린 뒤 저염간장으로 간을 하고 생파를 올린 전복조림도 손님들이 좋아하는 인기메뉴다. 전복 외에 다른 해산물을 활용한 창작 메뉴도 다양하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코스와 내용물이 달라지는 가성비 좋은 모듬 해산물 코스는 전복회와 방어회를 기본으로 당일 수산시장에서 공수해온 싱싱한 횟감으로 구성된다.

폰즈소스에 적셔 나오는 곰피·피조개·굴 세트, 닭육수로 우려낸 해산물 죽, 전복을 갈아 부친 전 등 채 대표의 창의적인 요리들이 끝없이 나와 눈과 입이 모두 즐겁다.


채 대표가 3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해삼내장이 들어간 와다라면은 굉장히 이색적이다. 해삼내장이 끓고 있는 라면 국물에 스며들어서 비린내는 없어지고 고급치즈 향이 올라와 식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좋다.

다만 이곳은 사전예약자만 방문이 가능하다. 그날 요리할 수 있는 만큼만 예약을 받고, 그 이상의 예약은 받지 않는다. 손님이 적더라도 최대한 성의껏 요리를 선보이고 싶은 이유에서다. 가게는 작고 소박하지만 요리에 대한 내공과 자부심은 탄탄하다.


위치 삼각지역 대구탕골목 끝자락까지 직진, 조르단 수선가게 맞은편
메뉴 모듬회 세트 2만9000원, 와다라면 1만5000원
영업시간 10:00~22:00
전화 02-749-9797


원대구탕. /사진제공=다이어리알
원대구탕. /사진제공=다이어리알

◆원대구탕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원조 대구탕집이다. 카운터 옆 주방은 탕재료가 담긴 냄비들을 쌓아두는데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순식간에 없어졌다 다시 쌓이는 일이 반복된다. 이러다가 대구의 씨가 말라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만큼 인기 있는 곳이다. 메뉴는 오로지 대구탕 하나고 반찬도 동치미와 아가미 젓갈뿐인데 한끼식사로 손색이 없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냄비에 가득 찬 미나리와 콩나물을 걷어내면 대구살, 곤이, 이리, 애가 넉넉하다. 국물이 뻘겋게 변하며 물이 주체를 못하고 끓을 때 먹으면 된다. 국물이 졸아들면 면을 풀어서 먹다가 볶음밥을 추가해 냄비까지 긁어먹을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62가길 8 / 10:00~22:30 / 대구탕(1인) 9000원, 볶음밥, 사리추가 1000원 / 02-797-4488


전원. /사진제공=다이어리알
전원. /사진제공=다이어리알

◆전원

노부부가 30년 넘게 운영하는 일식집이다. 나이가 일흔살이 넘지만 손은 아기처럼 부들부들하고 몸은 굳세고 건강해 회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국내 1인자라고 자부하는 집이다. 인테리어부터 맛까지 과거를 간직했다. 홀과 주방을 잇는 통로는 서서 들어갈 수 없다. 대신 기어들어가는 구멍이 있다. 단체방은 오사카식 다다미방이며 메뉴판도 예스럽다. 메뉴에서는 숙성회의 진미가 느껴진다. 선어회가 베이스인 모듬회 세트, 초밥, 덮밥 등이 기본 메뉴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 3가 1-3 / 생선초밥 1만3000원, 장어구이정식(1인) 2만9000원 / 11:30~22:00 (연중무휴) / 02-794-8590


평양집. /사진제공=다이어리알
평양집. /사진제공=다이어리알

◆평양집
주당들과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손꼽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곱창집이다. 양, 곱창, 염통 등 쇠고기의 특수부위를 판매한다. 양과 함께 인기 있는 차돌박이는 두께가 두툼한 편이다. 넉넉한 건지가 돋보이는 내장곰탕도 식사메뉴로 괜찮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137-1 / 06:00~22:00 (명절당일 휴무) / 양 2만6000원, 곱창 2만1000원 / 02-793-6866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