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패션의 성지’ 동대문이 위기다. 성장을 거듭해 온 동대문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암초를 만난 것. 중국과의 갈등은 도·소매 구분 없이 타격을 입히는 중이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이 오로지 사드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머니S>가 동대문상권을 긴급 진단했다. 위기의 근본원인과 실태를 점검하고 해결책이 뭔지 짚어봤다.<편집자주>

“사든가 시든가 때문에 죽겠어 진짜. 손님도 없고.” 썰렁한 매장 분위기 속 한 동대문 상인의 푸념이다. 사드 여파로 중국인관광객(유커)의 발걸음이 크게 줄면서 동대문 상인들의 주름이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사드는 곧 재앙이다. 지난해 사드 배치가 결정될 때만 해도 “별 탈 없겠지”라며 관망하던 상인들은 점점 중국인의 발길이 줄어들자 피부로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굿모닝시티 여성복 매장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굿모닝시티 여성복 매장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유커 30% 감소… 내국인은 온라인에 뺏겨

설 연휴가 끝난 지난 1일 오후 동대문을 찾았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동대문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쇼핑몰 내부에도 군데군데 유커로 보이는 무리가 쇼핑을 즐기는 것 빼곤 국내 고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쇼핑몰 남성복 층은 손님이 하나도 없어 기자 혼자 뻘쭘히 매장을 둘러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동대문 메인상권에 위치한 쇼핑몰 ‘굿모닝시티’를 찾았다. 매장 복도를 지나자 상인들의 뜨거운(?) 시선이 집중됐다. 한 남성캐주얼 매장 상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때다 싶었는지 “찾으시는 거 있어요? 싸게 줄게요”란 말로 기자를 매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옷을 좀 둘러보는 척하다 상인에게 취재 중이라며 명함을 건넸다. 표정에 실망이 섞이며 “보시면 아시잖아요. 파리 날려요, 요즘”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확실히 중국인들이 줄었어요. 예전엔 정말 바글바글했거든요. 웬만한 국내 손님 5명분의 옷을 (유커) 혼자 사니까 우리로서는 최고의 고객이죠. 지난해 사드 얘기가 나왔을 때도 눈에 띄게 줄지 않았는데 요즘은 30% 정도 감소한 것 같아요.”

옆 건물 ‘헬로우APM’을 방문했다. 이곳 역시 고객 수가 많지 않았다. 손님이 없자 아예 자리를 잠시 비운 직원도 많았다. 지하1층으로 내려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브랜드의 신발 편집숍이 제일 먼저 시선을 끌었다. 

편집숍 매장 상인에게 ‘요즘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고객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그래도 매년 이맘때는 세뱃돈 받은 10대들의 방문이 많다. 코 묻은 돈이라도 노려야 하는 상황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타몰 광장 이벤트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두타몰 광장 이벤트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7시 ‘두타몰’(두산타워몰)을 찾았다. 퇴근시간 이후라 쇼핑몰 내부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객이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유커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내부에 한류테마관과 두타면세점 등이 구비돼서인 듯했다. 이전 쇼핑몰들에 비해 내부가 넓고 푸드코트, 편의공간 등이 잘 갖춰진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곳 직원들은 이것도 줄어든 것이라며 푸념했다. 4층 여성의류매장 직원은 “사람들로 붐벼 보이지만 매출은 하락세”라며 “중국인들은 물론 홍콩, 일본인관광객의 방문비율이 높던 2015년엔 일매출이 1000만원 단위로 나왔다. 아직은 유커가 많은 편이지만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여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듣고 있던 옆 매장 직원이 다가와 답변을 거들었다. 그는 “요즘 동대문에선 모이면 사드 얘기다”며 “국내 고객들은 대부분 온라인쇼핑쪽으로 빠져 매출을 유커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신평화시장 도매상가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신평화시장 도매상가 모습. /사진=김정훈 기자

◆중국 상인 급감… ‘KC인증’ 의무까지 ‘설상가상’

동대문 도매시장에도 사드 여파가 느껴졌다. 큰 가방을 들고 시장을 드나들던 중국 상인들이 자취를 감춘 것. 신평화시장 의류매장의 한 상인은 “보통 9시부터 의류업자와 중국바이어, 물류직원의 방문이 이어지며 이 일대가 떠들썩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라며 “특히 큰손인 중국 상인의 방문이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인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측의 무역보복 탓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강화된 통관절차로 중국 상인이 주문한 동대문 옷이 현지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것. 자연스레 중국 상인 측의 주문 취소가 이어졌다. 

유어스쇼핑몰이나 광희상가, 제일평화시장 등 다른 도매상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이대로 가다간 정말 모두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도매상가들은 대부분 전체 매출 중 중국 수출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일부는 90%에 달하는 실정이다. 

도매상가의 한 상인은 “통관수수료가 인상되면서 물류업체들이 운송비용을 2배나 올렸다”며 “1.2평 남짓한 이 점포만해도 임대료가 월 1000만원 정도다.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동대문 도매상인들은 더 큰 문제를 토로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전기용품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 때문이다. 전안법은 전기용품과 공산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법. 동대문 상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KC인증 부분이다. 

전안법 시행으로 의류·잡화 등 모든 생활용품은 KC인증을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인증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검사원에 제품을 보내면 5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인증에도 일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제조부터 판매까지 빠른 속도로 각광받던 동대문의 메리트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작은 액세서리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B씨는 “전안법대로라면 작은 실핀 하나도 인증을 받으란 소린데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며 “또 중국 상인들은 오후에 주문해 다음날 아침이면 물건을 받길 원하는데 5일씩 걸린다면 누가 동대문에서 물건을 사겠나”라고 정부의 현실성 없는 정책을 비판했다.

취재차 들른 동대문이지만 기자도 귀갓길에 옷 몇벌을 구매했다. 옷값에서 ‘차비를 떼주네 안 떼주네’로 소소한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계산대서 ‘좀 깎아달라고 해볼까’란 생각도 잠시, 무심히 옷을 쇼핑백에 넣어주는 직원 표정에 순순히 카드를 건넸다. 2017년 어느날, 동대문의 표정도 그렇게 어두워져갔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