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보다 중요한 것 '생태계 조성'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전기자동차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가 90만대에 이르고 우리나라도 2010년 처음 66대가 보급된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1만1767대가 팔렸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1만4000대를 추가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본격적인 전기차 확대 드라이브의 시동을 건 셈이다. 하지만 대책 없는 ‘물적지원’ 위주여서 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기차 충전소. /사진=머니S DB
전기차 충전소. /사진=머니S DB

◆ 보조금 줘도 안사는데, 목표만 늘려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급 예산으로 지난해(1485억2400만원)의 1.8배 수준인 2642억7400만원을 배정했다. 이 예산 중 1960억원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으로 사용된다. 정부는 올해 1만4000대의 전기차에 각 1400만원의 국고를 보조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지자체별로 300만~1200만원을 추가보조한다.

올해 전기차 구입시 지방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는 101곳이다. 지난해 31곳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울릉도가 대당 1200만원(142대)을 지원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대당 1000만원(30대)을 지원하는 청주시다. 전체 전기차 보급량의 절반 이상(7361대)이 배정된 제주도는 대당 600만원을 지원하며 3483대를 보급하는 서울시는 지방비를 확정하지 못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전기차 구매에 큰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전기차가 동급의 내연기관차량보다 가격상 이점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일례로 기본가격 4000만원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구매할 때 국고와 지방금을 합쳐 2000만원 정도를 지급받으면 동급 옵션의 아반떼와 비슷한 가격이 된다는 게 환경부 측의 설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의 연료비는 현재 휘발유차의 10% 수준이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충분히 메리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고 내다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했을 때 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구매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지난해 판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같은 보조금을 지급해 더 많은 목표를 채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보조금 기조는 지난해와 달라지지 않았다. 국고보조금은 똑같이 유지된 채 지원 대수가 늘어났을 뿐이다. 정부는 지난해 ‘1만대 보급’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판매된 전기차는 5914대에 그쳤다. 지방비 지원 범위가 늘어났지만 1만4000대가 모두 팔릴지는 미지수다.


특히 그동안 전기차 구매자는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법인이었다. 환경부가 지난 8월 작성한 ‘전기차 구매자 유형별 분류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판매된 전기자동차 7787대 중 일반 개인이 구매한 경우는 3905대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법인(1179대)과 관공서(1179대), 공공기관(490) 등이 할당으로 구매했다.


전기차 충전소. /사진=머니S DB
전기차 충전소. /사진=머니S DB

◆ 기형적 기준, 경쟁력 실추
업계에선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는 판매 중인 전기차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전기차 구매층으로 발전할 수 있는 얼리어답터들은 인터넷을 통해 테슬라 등 혁신적인 제품들의 정보를 습득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시장규모가 크지 않은 탓도 있지만 정부의 낡은 기준에 가로막혀서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에 포함된 ‘완전충전에 걸리는 시간’ 제한이다. 정부의 '전기차 보급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을 보면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1회 충전으로 상온에서 최대 120㎞ 이상 주행해야 하고 완속 충전기(7㎾h) 기준으로 완전충전에 10시간 이하가 걸려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려면 이론적으로 배터리 용량이 70kW에 못미쳐야 한다. 이를 넘어서는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차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전기차 비중이 높고 기술발전이 활발한 국가들의 보조금 규정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배터리 용량이 높을수록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한다. 일본 자동차 연구기관 ‘포인’(FOURIN)의 세계자동차조사월보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배터리 용량에 따라 연방정부가 최대 7500달러의 세금우대혜택을 지원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배터리 용량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지급된다. 5~16kWh이면 6000~1만캐나다달러를 지급하고 16kWh를 초과할 경우 3000캐나다달러를 추가지급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완전충전시간 기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가 제기됐는데 이제서야 폐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테슬라와 BYD 등 대용량 배터리를 통해 전기차의 활용도를 높인 업체들은 이 기준 때문에 한국진출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형적인 기준이 우리나라 업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보호무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이고 적극적인 정책과 시장요구를 수용하는 다양한 보급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은 결국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만큼 하루속히 민간 차원에서 전기차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