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지났으니 차츰 나아지겠죠.” 올해 업황을 바라보는 조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절벽을 만나 큰 시련을 겪었다. 글로벌 조선업계에 불어닥친 한파지만 대규모 '적자쇼크'에 휘청이던 국내 업체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다행히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는 조선업계의 말이 현실화됐다. 지난달 국내조선업계에는 수주낭보가 이어졌다. 1월 한달간 수주한 금액이 지난해 1분기 전체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유가 상승 등 조선업황을 살릴 호재도 이어져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숫자가 ‘착시’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조선업황이 단기간에 회복될것이라는 전망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 1월 수주호재, 착시현상?
지난달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실적은 총 17억5000만달러 수준인 것으로 집계된다. 한달 수주실적이 지난해 1분기 대비 3배로 늘었다. 지난해 1월 한국 조선업계는 현대미포조선이 4700만달러 규모의 아스팔트 겸용 석유제품선을 수주한 것이 유일했고 1분기를 통틀어도 5억5000만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 첫 수주는 삼성중공업이 따낸 대형 해양플랜트 계약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세계최대 석유회사인 BP와 12억7000만달러 규모의 부유식 해양생산설비(FPU) 1기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삼성중공업은 같은달 18일 노르웨이 회그(Hoegh)LNG로부터 17만㎥ 규모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설비(LNG-FSRU) 1척을 수주했다. 선박가격은 약 2억3000만달러다. 삼성중공업은 선박 수주와 함께 동형선 3척에 대한 옵션계약을 체결해 추가 수주도 기대된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마수걸이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은 노르웨이 선사인 'DHT'로부터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을 수주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수주한 선박은 31만9000톤급으로 인도예정일은 각각 내년 7월과 9월이다. 선박가격을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VLCC 시장가격을 고려해 척당 8200만달러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 대한조선도 프랑스 선사 SFL로부터 11만4000DWT급 LR2탱커 2척을 수주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처럼 전해진 수주소식이 즉각적인 업황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우선 올해 수주량 중 13억달러에 달하는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수주를 제외하면 상선 수주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성동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STX조선해양 등은 아직까지 새해 첫 수주를 기록하지 못했다.

올해 수주목표가 지난해 하향조정한 목표치와 동일한 수준임에도 달성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선 빅3의 올해 수주목표는 현대중공업 58억달러, 삼성중공업 60억달러, 대우조선해양 55억달러 등 총 173억달러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은 수주목표치 달성이 유력하지만 다른 회사는 당분간 신규수주가 불투명하다”며 “조선 3사의 올해 수주는 지난해 실제 수주금액보다는 늘어나겠지만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해양플랜트 외에 상선 수주가 더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 수주 없으면 자구계획도 '무용지물'

수주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업계에서 감내해야 하는 ‘혹한’은 장기화 된다. 수주가 회복될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구조조정이 가혹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 3사는 지난해 5월 내놓은 자구계획을 성실히 이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정부 발표를 보면 조선 빅3는 앞으로 2~3년간 이행하기로 한 10조3000억원의 자구계획 중 4조1000억원을 이행했다. 하지만 자구안 이행과 병행해야 할 수주목표를 지난해 달성하지 못하면서 올해는 구조조정이 한층 급격히 이뤄질 전망이다.

조선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가동 중단이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6월 이후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할 방침이다. 군산조선소에서는 현재 12척의 선박이 건조 중인데 올 상반기 중 모두 완성될 예정이다. 선공정 부문 인력들은 이미 일감이 떨어져 후공정으로 전환배치가 이뤄지고 있다. 전라북도와 군산시 등이 조선소 폐쇄에 반발하지만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신규수주를 받지 못할 경우 구조조정 말고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조선 빅3는 올해 1만4000명을 추가 감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6713명)의 두배가 넘는 규모다. 이런 구조조정은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자구안 이행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노조가 사측의 사업부문 분사 및 인력감축에 반발해 지난해 단체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사측에 임금인상을 주장하지 않는 대신 고용보장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협력업체에 배분되는 작업물량이 급감해 도산하는 업체가 급증할 전망이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2017년 상반기 일자리 전망'에서 올 상반기 조선업 일자리가 전년 동기 대비 15.0%(2만7000명)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구조조정 추진과 함께 조선업 일감확보를 위해 신조선박 발주지원에 나서고 고용유지 및 재취업 지원에 힘쓴다는 방침이지만 근본적으로 ‘수주’가 살아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수주가 점차 회복되길 내심 기대한다.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기조가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 환경규제 강화 등 전 세계적으로 신조선박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 조금이라도 업황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