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전국에 수백개의 벽화골목이 생겼지만 ‘원조’는 여기가 아닐까. 부드러운 봄빛과 어울리는 동피랑, 박경리 선생의 서피랑, 조선시대부터 월드클래스 명품을 만들어 온 통영 12공방까지 타박타박 걸으며 통영을 만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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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
◆열살 된 벽화마을, 동피랑
벽화마을은 더 이상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다. 전국 팔도에 워낙 많은 벽화마을이 있어서다. 너무 많아지다보니 그렸던 벽화를 지우는 마을도 생겨난다. 하지만 이곳은 좀 다르다. 맨 처음 벽화골목의 붐을 일으킨 곳. 바로 동피랑 마을이다. 음식도 원조집을 찾아 가는데, 여행에서도 ‘원조’의 맛을 한번 느껴보면 어떨까.
동피랑에 가려면 언덕을 올라야 한다. ‘피랑’은 벼랑이란 뜻이다. 골목을 조금만 오르면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벼랑 꼭대기에 도착한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곳으로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할 예정이었다. 동포루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통영시의 원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거주민들과의 한바탕 난리는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때가 2007년이니 벌써 10년이 흘렀다.
언덕에 자리한 달동네는 따스한 감성을 일으키는 예쁜 동네로 바뀌었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전설적인 ‘날개’ 벽화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의 긴 줄이 이어졌다.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을 위해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 헐고 철거 계획을 취소했다. 동피랑 마을은 명소가 됐고 타 지역의 여러 낙후된 마을에 좋은 본보기가 됐다.
동피랑 마을의 벽화에는 통영이 있다. 통영의 대표 인물 윤이상, 박경리, 이중섭 등이 있고 통영의 풍경과 따스한 분위기가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와 꿈도 담겨있다. 동피랑 마을의 사진이 예쁜 이유는 하늘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통영의 온화한 공기가 하늘빛, 물빛에 담기며 동피랑을 더 포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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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루. |
◆이야기 따라 뚜벅뚜벅, 서피랑
강구항 동쪽 언덕에 동피랑이 있다면 서쪽에는 서피랑이 있다. 동피랑이 동화 같다면 서피랑은 수필 같다. 골목들은 현실적이면서 담담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은 서피랑에도 벽화가 많지만 벽 자체가 볼거리인 골목도 있다.
서피랑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강구항 쪽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다 보면 진귀한 벽과 마주친다. 가장 아랫단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알록달록 돌벽이, 그 위로 100년은 됐을 것 같은 성벽이, 그 위로 근대 이후 올린 벽돌담장이 있다. 인간이 만든 지질층인 듯 지나온 세월을 볼 수 있다.
꼭대기에는 동피랑과 마찬가지로 포루가 있다. 서쪽에 있어 ‘서포루’다. 이곳은 앞뒤 전망이 다채롭다. 동피랑과 강구항, 항남동이 내려다보이고 산쪽으로는 명정동 일대와 통영대교 가는 길도 보인다. 또 360도 탁 트여 통영 세병관과 북쪽의 북포루까지 통영시내를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다.
서피랑 언덕과 충렬사로 이어지는 마을은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박경리 선생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언덕에서 내려와 천천히 골목을 걷다 보면 선생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 근처에 이른다. 소설 <김약국집 딸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멀지 않은 곳에 대한민국 4대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공덕귀 여사의 생가가 있다. 또 한번 골목을 돌면 통영 12공방 중 무형문화재 두석장 김극천 선생의 공방이 있다. 충렬사로 이어지는 길에는 이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이 있어 느린 걸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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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피랑. |
◆조선의 명품브랜드, 통영 12공방
통영엔 12개의 공방이 있다.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닌 저 남쪽 끝 통영일까.
철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이헌구는 ‘통영 장인이 만든 경상을 소반과 함께 2냥 2전에 마련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1809년에 제작됐다는 이 경상은 아직도 튼실하고 야무지게 남아 있다. 보통 이런 고급제품은 수요자인 임금님과 양반들이 사는 한양 가까이에서 공급할 것 같은데 한참 떨어진 통영에 공방이 있었던 것이 의외다. 조선시대의 교통 사정을 감안하면 여긴 까마득한 어촌이다. 바다 건너에 유배지 거제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멀고 외떨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한양 어르신들’은 여기서 만든 물건을 좋다고 칭찬하고, 샀다고 자랑했을까.
12공방은 임진왜란 때 마련됐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1593년 조정에서는 전라, 경상, 충청 3개도의 수군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사 벼슬을 내렸다. 처음에는 한산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세워 무기와 배, 생활에 필요한 많은 물건을 자급자족하기 시작했다. 이때 공인, 승려, 병사 등이 차출됐다. 전쟁이 끝난 후 1604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지금의 통영으로 옮겨왔고, 당시 통제사 이경준은 전국의 공인들을 불러 아예 공방을 일으켰다. 한 지역에 이렇게 다양한 공방이 모여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것도 대단한데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까지 명성을 떨칠 만큼 뛰어난 제품도 생산했다.
그렇다면 ‘12공방’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12’의 의미는 딱 12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다’는 뜻이다. 옛말의 관용적 표현으로 ‘열두고개’, ‘열두가지’ 등과 비슷한 형식이라 보면 된다. 그 ‘여러가지’란 부채, 옻칠, 장석, 그림, 가죽, 철물, 고리짝, 목가구, 금은 제품, 갓, 자개 등이다.
12공방의 전통은 현대에 다시 살아났다. 현재 통영에는 나전장 송방웅, 박재성, 김종량, 두석장 김극천, 갓일 정춘모, 염장 조대용, 소반장 추용호 등 총 10명의 장인이 있다. 400년 전 조선의 명품을 재현하는 귀한 손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시선을 끈다. 기품이란 이런 것이겠다.
그런데 작년에는 공방과 장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1년간 개장휴업 상태였던 전시판매장이 연말에 수탁자를 선정하며 개관했지만 소반장 추용호 선생의 공방은 철거 위기다. 이런 어수선함을 이유로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 좋겠다. 현재 통영 12공방의 모습을 둘러보려면 삼도수군통제영에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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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12공방. |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
동피랑 벽화마을: 통영시외버스터미널 – 101, 301, 231, 600, 530번 버스 승차 – 중앙시장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동피랑 벽화마을: 검색어 ‘동피랑벽화마을’ /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1길 6-18
서피랑: ‘서피랑 주차장’에 주차하고 골목 걷기 / 경상남도 통영시 명정동 303-1
삼도수군통제영: 검색어 ‘삼도수군통제영’ /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번지
동피랑
문의: 055-650-7400
http://www.dongpirang.org
통영관광포털
문의: 055-650-2714
http://www.utour.go.kr
삼도수군통제영
문의: 055-645-3805
관람요금: 성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http://tjy.ttdc.kr
음식
렛츠잇타코: 동피랑마을 아래 있는 조그만 멕시코 전통 타코집으로 간단한 식사 대용, 걷기 여행 후 맥주 한잔하기 좋다.
055-645-8512 / 경상남도 통영시 태평동 539-1
장어잡는날: 싱싱한 바다장어를 담백하게 구워 초고추장 양념에 찍어 먹는다. 장어탕도 인기 메뉴로 현지인 맛집으로 통한다.
055-643-2758 / 경상남도 통영시 도천동 영생상가 가동 2층 207호
숙소
서피랑 통영 게스트하우스: ‘매일 파티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내일로 기차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예약문의: 010-6275-9797 /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124
일다 게스트하우스: 황남동 강구안 문화마당 앞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동피랑, 서피랑에서 가깝고, 프리마켓, 문화행사 등에 참여하기 좋다. 가수 혁오밴드가 광고 촬영을 한 곳이기도 하다.
예약문의: 010-3399-4930 /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해안로 3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