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전월세 상한제’를 강하게 추진 중이다. 전세 재계약 때 집주인이 전세금을 5%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마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씩 뛰는 전셋값으로부터 전세난민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가로막는다. 전월세 상한제와 관련 최근 발의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9건에 이르는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찬반이 엇갈려 한차례 표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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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
◆전월세 상한제 부작용, 가능성은?
최근 새 전셋집을 찾는 회사원 이모씨는 “새집을 구해 이사하는 과정이나 비용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높은 전세금이라도 올려줄 생각이었는데 집주인이 직접 거주할 테니 집을 비워달라는 바람에 쫓겨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이처럼 단순히 전세금의 인상뿐 아니라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보장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발의된 주택임대차보호법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입자가 최장 6년(2년계약 3회 연장이나 3년계약 2회 연장)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재계약 시 전세금 인상률을 5% 이하로 제한하는 공통점이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법안이 시행될 경우 시장경제를 침해할 뿐 아니라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임대사업 자체를 축소하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월세 전환으로 인해 세입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논리에 가로막혀 법 개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또 집주인이 전월세 상한제 도입 전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릴 가능성도 제기한다. 실제 1989년 법적 전세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 당시 전셋값이 1년 사이 전국적으로 17% 급등했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는 “1970~1980년대는 법이 있어도 모르고 당하는 세입자가 태반이고 집주인이 전세금을 6개월마다 올려 받아도 속수무책이었지만 그동안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단지 부작용을 우려해 법을 못 고친다는 논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야당은 전월세 상한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는 등 앞으로 조기 대선이나 정권교체 여부에 따라 법안 자체가 정치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전월세 상한제의 찬반 구도가 ‘야당 대 정부·여당’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매매가 뛰어넘는 전셋값 상승세
전셋값이 계속 오르는 이상 전월세 상한제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기가 어려워 보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2~2017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평균 6000만원 올랐지만 전세금은 1억5000만원 이상 뛰었다. 전국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11년 60%에서 최근 80%를 넘었다. 집값과 전셋값 차이가 20%밖에 나지 않는 것. 서민주거의 안전판 역할을 하던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의 경우 2012~2017년 서울 평균 전셋값이 ㎡당 36.3% 폭등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임대료를 정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김남근 법무법인위민 변호사는 “선진국도 주거난 문제를 겪지만 세입자가 한집에서 수십년 동안 오래 거주하는 모습이 흔하다”며 “세입자와 집주인이 대등하게 협상하고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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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우건설 |
◆뉴스테이·계약갱신 청구권 ‘대안’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를 대신할 방안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최장 8년 동안 재계약이 가능하고 2년마다 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민간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을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 국토교통부는 뉴스테이 6만1000호의 부지를 확보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뉴스테이는 보증금과 월세 수준이 높아 중산층이나 입주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입주자격에 제한이 없어 주거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계약갱신 청구권’을 우선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지 않지만 전월세계약이 끝났을 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회에 한해 재계약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통상 전세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집주인 의사와 관계없이 세입자가 재계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하지만 이 역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만 치중하고 집주인을 역차별한다는 지적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