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씨는 신규통장을 개설하려고 은행에 갔다가 월 5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장잔액이 1000만원 미만인 계좌에는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비상금통장이 필요했던 이씨는 예상치 못한 수수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달 8일부터 씨티은행에서 입출금통장을 만들 경우 벌어질 시나리오다. 앞으로 씨티은행은 신규고객이 입출금통장을 만들 경우 계좌당 매월 5000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국내 점포 수가 가장 많은 KB국민은행도 창구거래수수료 도입을 검토 중이다. 말 그대로 창구에서 거래하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물겠다는 취지다.

씨티은행의 계좌유지수수료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은행권이 비대면 거래 활성화, 수수료 비용절감을 위한 새로운 방안으로 창구거래수수료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거래수수료에 대해 “은행직원이 통장을 만들어달라고 조르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반면 은행직원들은 “무료로 여겨지던 서비스의 가치가 드디어 인정받는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는다. 고객과의 갈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임에도 은행권이 수수료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은행 실패작, 16년 만에 부활

사실 계좌유지수수료는 SC제일은행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2001년 당시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은 통장잔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월 2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규정을 몰랐던 많은 고객이 은행과 잦은 분쟁을 일으켰고 결국 계좌유지수수료는 4년 만에 폐지됐다.


/사진=머니S DB
/사진=머니S DB

실패작으로 끝난 계좌유지수수료가 또다시 고개를 든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계좌유지수수료는 SC제일은행, 씨티은행 등 외국계은행이 몰고 온 신선한 변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터넷·모바일 등 온라인으로 전환된 금융환경도 변화를 이끌었다. 최근 은행권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핀테크 영향으로 비대면 금융상품을 크게 늘렸다. 실제 은행고객의 비대면거래가 총거래의 90%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앞도적으로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금융기관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고객 수는 1억2254만명으로 2015년 말 대비 4.9% 늘었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뱅킹 이용자는 15% 늘어난 7468만명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폰뱅킹 이용자는 매년 1000만명가량 증가해 3년 만에 두배가 됐다.

인터넷 금융거래가 늘면서 손쉽게 은행을 갈아타는 계좌이동도 보편화됐다. 2015년 10월 계좌이동제 시행 후 은행 간 계좌이동은 1000만건을 돌파한 상태다. 온라인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닫는 것이 쉬워진 상황에서 더 이상 계좌유지는 중요하지 않은 개념이 됐다.

이는 은행권이 비용절감으로 점포를 줄인 영향이 크다. 저금리 속 예대마진이 줄어든 상황에 점포를 줄이고 수수료를 올리는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올해 KB국민은행은 총 109개의 점포를 통폐합하거나 출장소로 규모를 줄였고 우리은행은 약 80개 점포의 통폐합을 진행 중이다. KEB하나은행도 2015년 통합 후 중복점포 위주로 76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이밖에 NH농협은행은 올해 50개, 신한은행은 28개의 점포를 통폐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여론은 계좌유지수수료와 창구수수료에 호의적이다. 은행권이 거둔 수수료수익으로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은행의 수수료 문제는 단순히 수수료로 돈을 벌겠다는 관점보다는 고객서비스를 차별화하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며 “디지털시대에 업무프로세스를 전환하는 등 새로운 발전방안을 내놓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대 멘 씨티, 수수료 정착될까

비대면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오프라인 거래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자칫 고객의 반발을 살 수 있어 수수료 부과가 정착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국내은행인 KB국민은행이 창구거래수수료를 도입하더라도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은행고객들은 소액예금이나 휴면계좌에 대한 계좌유지수수료, 창구거래수수료가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한다. 수수료에 대한 정서가 다른 탓에 고객이 반발하거나 은행의 신뢰도 하락, 나아가 고객 이탈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의 주요은행 수수료율을 보면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높다. 국내 송금수수료(창구)는 500~3000원인 반면 미국은 3만9700원, 영국 3만4600원, 일본 7100~9400원에 달한다.

온라인뱅킹을 통한 송금수수료 역시 우리나라는 무료 또는 600원으로 소액이지만 미국과 영국은 3만원 이상 부과한다. 높은 수수료에도 고객이 큰 불만을 갖지 않다 보니 미국·캐나다 은행들은 10년 전부터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머니S토리] 은행 '거래 수수료' 만지작, 왜?

또한 디지털뱅킹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년층이나 어린이도 고려해야 한다. 외국계은행은 고액자산가나 젊은 고객 비중이 높아 수수료를 물더라도 유치할 수 있는 고객이 많은 반면 국내은행 점포에는 직원상담이 필요한 고령층이 자주 방문한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은행권이 검토할 수 있는 수수료 종류와 수준의 윤곽이 잡힌다. 어린이와 노년층, 기존거래를 활발히 하는 고객에겐 거래수수료 부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씨티은행도 만 19세 미만 또는 만 60세 이상 고객은 수수료를 면제하고 주택담보대출, 펀드 등 연결계좌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앞서 씨티은행은 계좌유지수수료 외에 창구거래수수료와 통장발급수수료를 금융감독원과 구두 협의했으나 국내 금융소비자의 상황을 고려해 계좌유지수수료만 약관변경이 승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금융소비자의 정서를 고려하면 거래수수료 부과체계가 보편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해외사례처럼 수수료 징구 시마다 충분히 설명하고 인상배경과 주요 변경내용, 수수료 절약방안 등을 알려주면 고객의 호응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