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마을은 집집마다 역사다. 학자, 독립운동가, 문학가 등 자랑스런 인물이 많다. 보통 ‘역사’(History)는 남자의(His) 이야기(Story)라고 하는데 이곳엔 여자의(Her) 이야기도 있다. 340년 전 며느리 손맛 비법이 전해진다는 두들마을에서 남자 이야기를 올킬시킨 음식디미방도 만나보자.

 

[여행] 집집마다 역사가 서린 영양

◆History> 인물 많은 두들마을
‘두들’은 ‘언덕’이란 뜻이다.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 ‘두들마을’이다. 이곳은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 들어와 개척한 후 지금에 이르렀다. 1899년에는 이곳에 광제원이 있었다. 지금의 국립병원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원두들’ 또는 ‘원리’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는 30여채의 한옥과 명소가 있다. 집집마다 자랑스런 인물과 역사가 있어 한바퀴 돌아보며 산책하기 좋다.

우선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석계고택이 있다. 처음 마을에 들어온 석계 이시명 선생이 살았던 곳이자, 뒤에 소개할 정부인 장씨의 집이기도 하다. 지금도 종손과 종부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다.


석천서당은 석계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이다. 마루와 난간이 멋스러운 서당집으로 굴뚝이 재미있다. 보통 굴뚝은 지붕 위로 연기가 올라가게 높이 뽑는데 여기는 마루 아래로 나와 있다. 이렇게 굴뚝을 아래로 한 이유는 실내가 더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방이 더우면 공부할 때 잠이 올까봐 굴뚝을 아래로 냈다고 한다.

남악정은 갈암 이현일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이현일 선생은 정부인 장씨의 셋째 아들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학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산림(山林)으로 꼽힌다. 숙종 때 이조판서에 오르며 어머니인 장씨도 품계를 받아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됐다. 그러니까 갈암 선생은 입신양명해 효도한 케이스다. 집은 1674년에 지어졌고 갈암선생 문집 목판이 보관돼있다. 사주문의 현판 홍도문은 숙종의 어필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0호다.

유우당 역시 훌륭한 인물을 배출했다. 1833년 이상도가 주남리에 세웠던 집을 후손인 이돈호가 옮겨지었는데, 이돈호는 유림독립선언 또는 제1차 유림단사건이라 불리는 파리장서사건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1919년 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유림 인사 137명이 파리 평화회의에 독립탄원서를 보내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돈호를 포함한 관련자 대다수가 체포돼 곽종석·하용제·김복한 등 수많은 지사들이 감옥에서 순국하거나 처형됐다.


유우당은 항일시인 이병각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이돈호의 조카인 이병각 시인은 1910년에 태어나 1941년에 타계했으니 서른하나 짧은 생을 살았다. 실제로 활동을 한 것은 1935년부터 6년간으로 이 기간에 시 41편, 평론 20편, 수필 17편, 단편소설 3편을 남겼다.

집집마다 훌륭한 학자와 문인을 배출했으니 온 마을에 문학의 향기가 흐른다. 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두들 책사랑’에서 쉬어가도 좋겠다. 이곳은 차를 마시며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북카페로 이 고장 출신 문학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두들마을 출신 소설가 이문열의 책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경북 북부지역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졌다는 만석꾼집도 있고 주곡고택, 광록초당, 도사고택, 낙기대, 세심대 등 들여다볼수록 볼 게 많다. 붉은 흙담 위로는 봄꽃이 피어오르고 집집마다 고즈넉함이 감도는 두들마을이다.
 

두들마을.
두들마을.

◆Herstory> 정부인 장씨, 여중군자 장계향
다시 석계고택이다. 곳간 하나 없는 소박한 집이다. 이시명 선생의 청렴결백을 느낄 수 있는 이 곳은 후세에 남편보다 더 유명해진 여중군자(女中軍子) 장계향 선생의 집이기도 하다. 장계향은 이시명의 스승인 경당 장흥효의 딸이다. 스승이 자신의 총명한 딸을 내줬으니 스승 보기에 이시명 선생이 꽤 믿음직한 인물이었나 보다.

부인 장씨는 석계 선생에게 시집 와서 10남매를 모두 훌륭히 키워내고 80세 넘게 장수했다. 부인은 효행, 부덕, 학문, 예술을 겸비한 학자로 후손들은 신사임당과 동등한 인물로 칭송했다고 한다. 사람을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만 굳이 음식 솜씨를 겨룬다면 신사임당보다 한수 위가 아닐까 싶다. 바로 문제의 비서(祕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가의 레시피 ‘음식디미방’을 쓴 인물이라서다. 음식디미방이란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이란 뜻으로 여기서 ‘디’는 한자 지(知)의 옛말이다.

음식디미방은 340년 전에 쓰여졌다. 부인 나이 일흔이 넘어 며느리에게 물려줄 목적으로 쓴 것이다. 이 책은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저장, 발효식품 등 146가지 요리와 51가지 술을 소개한다. 덕분에 1600년대 안동지역 양반가의 전통음식을 지금도 재현할 수 있다. 총 30장 필사본으로 된 책 뒤에는 정부인 장씨의 당부의 말이 쓰였다.

‘이리 눈도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간단한 문장에서 부인의 인간미가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썼다.’ 하는 투정 섞인 애교도 보이고, ‘딸은 가져가지 말라’는 대목에서 시집 귀신이 돼야 하는 조선시대 여인의 운명도 보인다. 가장 크게 와닿는 건 부인의 자신감이다. 종부라면 누구나 하는 밥과 반찬, 제사음식이라 생각했다면 이를 기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비법에 대한 자신감과 기록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건 앞선 생각을 가진 총명한 여인이었음을 나타낸다. 덕분에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기록된 요리서이자 여성이 쓴 아시아 최고의 조리서로 기록된다.

석계종택 옆으로는 음식디미방 체험관, 음식디미방 교육관과 전시관이 있다. 또 근처에는 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와 장계향 예절관, 유물전시관이 있어 두들마을에서 하룻밤 한옥체험을 하며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을 맛보거나 직접 배울 수 있다.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과 조귀분 종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레시피가 있어도 만들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석계종택 종부 조귀분 여사는 ‘여중군자 장계향’을 현대로 소환하는 역할을 한다. 음식디미방의 전통 음식을 만들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가르쳐준다. 시할머니의, 시할머니의, 시할머니의 뜻을 소중히 여기고 그대로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비법서의 원작자인 장씨 부인은 저승에라도 ‘나이 칠십이 넘어 눈도 어두운데 힘들게 쓴’ 보람을 느낄 것이다.

처음부터 종부로 태어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조귀분 여사는 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젊은 시절 SLR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닐 정도로 활동적이고 감각적인 여성이었다. 사랑의 힘이 위대했는지 종가집 며느리가 된 후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소박하지만 고운 빛깔의 한복과 직접 차려 낸 다과상이 아름답게 어울린다.

다과상에는 예쁜 꽃이 피었다. 가운데 자리 잡은 장미꽃은 말린 사과고, 그 옆 데이지꽃은 곶감으로 말은 호두다. 이 아까운 걸 어떻게 먹나 한참을 망설이다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눅진한 달콤함이 향기롭게 입안에 퍼진다. 조그만 찻잔에 꽃잎을 띄우니 귀한 대접에 몸이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다도를 배우지 않아도 이 앞에서는 그냥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음식이란 게 이런 능력이 있다. 잠깐 보여졌다. 입속으로 들어갈 것들을 위해 어떤 것은 몇달 전부터 씻고 말리고 다듬었을 것이고, 어떤 것은 가장 좋은 시간을 잡느라 부지런을 떨었을 것이다. 그 정성이 고마워서 깍듯하게 상을 받는다. 그 시간을 인내하고 자신의 것으로 즐기는 종부의 손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한다.


한울가든.
한울가든.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두들마을: 영양시외버스터미널 - 영양버스정류장에서 농어촌버스(감천-건들마을 구간, 감천-주남초입구 구간) 탑승 – 원리1리 정류장에서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두들마을: 검색어 ‘두들마을길’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음식디미방: 검색어 ‘음식디미방’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길 66

음식디미방
문의: 054-682-7764
http://dimibang.yyg.go.kr
음식만들기 체험: 오전 11시, 오후 2시 / 예약 필수 / 1인 10,000원
전통음식 체험: 소부상 29,000원 / 정부인상 55,000원 / 예약 필수

영양문화관광
문의: 054-682-2241
http://tour.yyg.go.kr

음식
한울가든: 영양읍내에 있는 한식집으로 산채정식, 돌솥정식 등 상차림이 푸짐하다.
054-682-7300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솔광장길 9-5

숙박
두들마을 한옥스테이: 이병태고택, 이원박고택, 석계종택 등 3동 고택에 숙박체험이 가능하며 사이트를 통해 확인하고, 전화예약을 하면 된다.
http://dimibang.yyg.go.kr / 이병태고택 054-682-8050 / 석계종택 054-682-1480 / 이원박고택 054-682-8050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