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통신산업 전시회 ‘2017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가 열렸다. MWC는 전세계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제조사 및 장비업체의 연합기구인 GSMA(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 Association)가 주최한다.
MWC에서는 주로 더 빠른 통신망을 선보인다. 여기에 걸맞은 더 선명한 화면, 더 빠르고 더 오래가는 스마트기기가 다양한 형태로 개발돼 발표된다.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의 각축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매년 삼성전자의 갤럭시S나 LG전자의 G시리즈 등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웨어러블기기들이 주목받는다. IT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자사의 기술력이 담긴 플래그십모델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번 MWC에서 스마트폰 G6를 선보였고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MWC가 이동통신 박람회인 만큼 이동통신사 SK텔레콤과 KT도 참여했다. 5G시대를 좀 더 빨리 구현하기 위한 표준화작업에 전세계의 빠른 동참을 호소한 점이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이 비운의 운명을 겪으면서 삼성전자는 이번 MWC에서 갤럭시S시리즈 모델을 선보이지 않았다. 보다 완벽한 갤럭시S8의 데뷔를 늦춘 대신 태블릿 몇종만 선보였다.
MWC도 올해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감지됐다. MWC가 그동안 더 빠르고 좋은 스마트기기를 발표하는 IT기업들의 각축전이었다면 올해는 단순히 무선기술의 요소를 찾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와 컬래버레이션
지난해와 올해의 MWC 화두만 봐도 큰 차이가 보인다. 지난해 ‘모바일이 모든 것이다’(Mobile is Everything)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올해는 ‘그 다음 요소’ (The Next Element)를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올해 MWC의 전시 콘셉트가 스마트에서 인텔리전트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MWC는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감성, 총명함, 창의성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인텔리전트한 세상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어느 한 기업, 한 섹터의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 세상의 변화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글로벌 비즈니스의 화두 역시 창조적 파괴와 이종산업 간의 컬래버레이션이다. 과거에는 관련이 없던 업체나 인물이 의외의 장소에서 시너지효과를 나타내는 일이 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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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월드콩그레스2017. |
지난 1월 가전제품 전시회 CES에서도 전통적인 가전업체 대신 새롭게 등장해 주목을 받은 업체가 있었다. CES 개막 행사에서 그래픽보드를 만드는 부품업체인 엔비디아(NVIDIA)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엔비디아가 자율운행차의 인공지능(AI)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사장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글로벌 IT업계와 가전업체들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주인공도 더 이상 기존 자동차 메이커가 아니었다. 자동차업체가 아닌 IT 대표 기업인 구글의 자율운행차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앞으로는 완성차업체들이 자동차시장을 IT 업체와 나눠 먹어야 한다. 경쟁은 더 심해졌고 더 이상 과거의 시각으로는 생존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테슬라·넷플릭스의 교훈
엘런 머스크가 초기에 전기차업체인 테슬라를 기획하고 투자자를 찾으러 다닐 때 미국의 빅3 자동차업체가 모두 문전박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심지어 월가 투자은행(IB)들도 투자를 거부했다고 한다. 미래 먹거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에도 미국 빅3 자동차업체는 테슬라를 견제했다. 테슬라는 자동차 공장을 디트로이트 등 자동차산업 대표지역 대신 IT의 메카 실리콘밸리 인근에 지었고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 테슬라 매장이 자동차판매점에 입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견제에도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현재 400억달러 수준이다. 이제는 대표 자동차업체 GM 시가총액의 70%까지 쫓아올 정도로 커졌으니 빅3 자동차업체들이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도 당연하다.
가전박람회 CES와 디트로이트 모터쇼처럼 MWC에서도 대표 연설자를 보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이번 MWC의 진짜 주인공은 개막식의 대표 연설자로 나선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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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사진=뉴시스 권현구 기자 |
헤이스팅스 회장은 전세계에서 비디오 렌트가 대세인 시절 스트리밍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는 사업 초기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려 비판을 받았고 온갖 무시를 감내하며 과감하게 드라마를 제작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해외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런 도전정신 덕분에 헤이스팅스는 창조적 파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혁신 경영자라는 의미에서 포스트 잡스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MWC의 초청연설에서도 그는 미래의 콘텐츠사업을 포함한 정보통신시장의 변화, 그리고 AI시장에 대한 시각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의 연설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을 소개하겠다. “10년 후, 20년 후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틀에 갇혀 안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늘 새로운 것을 위해 기존의 낡은 시각과 틀을 파괴해야 한다.”
취업이나 투자의 기준을 세울 때 헤이스팅스의 연설을 적용할 수 있다. 투자할 때는 시대적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변화하는지를 꼭 살피고, 취업할 때는 기업이 창의적 경영환경을 제공하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기존의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이 2017년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