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의 대표 주류업체 보해양조가 위기에 봉착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부적으로 임직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근간이 흔들려서다. 보해의 성장 키워드는 주력 제품인 ‘잎새주’였다. 하지만 한때 90%에 달하던 안방시장 점유율이 최근 50%까지 떨어지면서 보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더욱 문제를 키운 것은 3세 경영인, 임지선 대표이사 부사장의 신제품을 향한 집착이다. 그는 2015년 11월 30세의 젊은 나이에 대표이사가 된 뒤 소주에 집중하지 않고 탄산주, 과실주 등 무리한 주종 다변화에 열을 올리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 사이 경쟁업체 하이트진로는 호남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임 대표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다. 소비자도, 업계도 보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전남 장성에 위치한 보해 장성공장. /사진제공=보해양조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전남 장성에 위치한 보해 장성공장. /사진제공=보해양조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 신제품·월급 까이고…산 넘어 산
보해양조 임직원은 최근 회사측과 별도의 임금 반납 계약을 체결했다. 창립 6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월부터 직급별로 대표이사 등 임원진은 20~30%, 직원들은 10%의 임금을 자진 반납 중이다. 회사  측은 “합의에 따른 자진 반납”이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임금반납동의서에 서명을 강요한 임금삭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실적 부진 탓이다. 보해양조는 내수 경기 침체와 소비자 트렌드 변화로 인한 제품 판매 감소로 매출이 1155억원을 기록, 전년대비 6.7% 줄어들었다.

수익성도 크게 악화됐다. 영업손익은 2015년 82억원 흑자에서 1년 만에 6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보해양조가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11년 창해에탄올에 인수된 뒤 처음이다. 당기순이익도 6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보해양조의 이러한 위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신제품 출시와 그로 인한 마케팅 비용 증대다. 실제 보해양조는 지난해 임 대표의 지휘 아래 ‘아홉시반’, ‘부라더#소다’, ‘복받은 부라더’, ‘딸기라 알딸딸’, ‘풋사과라 풋풋’, ‘요거슨 욕구르트’, ‘빠담빠담 빠나나’, ‘자, 몽마르지?’, ‘술탄오브콜라주’ 등 다양한 신제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신제품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쏟아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반짝 인기를 끌던 부라더#소다는 경쟁 제품에 밀려 판매량이 급감했고, 임 대표의 야심작이었던 아홉시반도 8개월 만에 영업을 접었다.

신제품을 알리기 위해 영업·마케팅을 공격적으로 강화한 탓에 곳간만 비었다. 보해양조는 지난해 영업활동비와 광고선전비로 각각 51억원, 95억원을 지출했다. 임 대표 취임 전과 비교하면 각각 51.5%, 65.2% 급증한 수치다. 여기에 부라더소다 캔 공정을 재정비하기 위한 생산라인을 교체하면서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했다.

일각에선 보해양조의 실패 원인을 신제품이 담긴 ‘신병’에서 찾는다. 소주업체는 통상 초록색 공병 재활용을 통해 가장 큰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면서 이익을 남긴다. 보증금병 재사용은 병당 약 80원의 원가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병 하나당 7~8회까지 재사용이 가능한데 소주병 기준 병당 제조원가는 세척비 등을 포함해도 1회 사용시 143원, 8회 사용시 64원밖에 들지 않는다.

반면 신병 제조원가는 재활용 비용의 3~5배다. 보해양조 신제품의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않는 페트병이란 점을 감안하면 보해양조의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트병은 병에 비해 제조원가가 높을 뿐 아니라 유통기한이 짧아 재고 부담도 높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주류업체들이 과일리큐어 시장에 뛰어들면서 신병에 담지 않고 기존 초록색 병을 썼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병값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 주류업체 특성상, 원재료와 병 모양을 바꾸고 이에 따른 생산설비도 조정해야 하는 신병은 무리수를 두는 것과 다름 없다”고 귀띔했다.


임지선 보해양조 대표. /사진제공=보해양조
임지선 보해양조 대표. /사진제공=보해양조

◆ 참이슬에 뺏긴 안방…잎새주의 추락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해양조의 주력 제품인 잎새주의 추락이다. 안방인 광주·전남에서 잎새주의 힘이 약해지면서 한때 90%를 넘었던 시장점유율이 하이트진로에 밀리며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해양조 내부 관계자는 “지역주류업체인 보해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안방 고정수요층에서 나오는 잎새주의 안정적 매출 덕분”이라면서 “신제품을 앞세워 수도권 주류시장에 집중하는 사이 존재 기반이 핵심시장이 무너져 버렸으니 내부적으로도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도수에 집착했던 탓일까. 저도주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잎새주 도수를 19도로 유지했던 게 화근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그 사이 17.8도를 앞세운 참이슬은 광주·전남 시장에서 서서히 점유율을 늘려갔다. 지난해 8월 뒤늦게 잎새주 리뉴얼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0.5도 낮춘 18.5도로 변경했지만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지난 3월 다시 한번 잎새주 리뉴얼을 단행, 참이슬과 같은 17.8도로 도수를 대폭 낮췄다.

무너진 안방을 지키기 위해 최근 서울영업소에서 근무해 온 영업 및 사무직 인력 30여명을 호남지역으로 재배치하기도 했다. 당장은 호남지역 방어에 집중하겠다는 게 보해 측의 전략이다.

동시에 임 부사장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검증이 덜 된 3세를 앞세운 무리한 경영이 현재 보해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과연 임 대표가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자신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을까.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