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혁신안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간판을 바꾸고 조직과 인력을 축소·개편해 경제단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진의를 의심하는 눈길이 여전해서다. 일각에선 믿고 쇄신행보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경유착 근절과 싱크탱크 역할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전경련의 환골탈태 시도가 제대로 이행될지 주목된다.

◆‘전경련→한기련’ 50년 만의 개명

지난달 24일 전경련은 1968년부터 50년간 사용해온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경제인(회장) 중심 협의체에서 기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바꿨다.


연장선에서 회장단 회의를 폐지하고 중요 의사결정은 신설되는 경영이사회에서 하기로 했다. 경영이사회 멤버는 오너를 제외한 주요 회원사 전문경영인 등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조직이 운영되면 회원사들이 지적한 사무국의 독단적 의사결정 관행도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영이사회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같이 각종 분과위원회를 만들고 회원사가 원하는 전문 이슈에 대해 소모임을 만드는 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사무국 기능은 이사회를 보조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대신 이사회 내 소위원회 등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정경유착 창구 역할을 한 사회협력본부와 사회협력회계를 폐지하는 등 조직과 예산을 40% 이상 감축한다. 이에 따라 기존 7본부 체제는 커뮤니케이션본부, 사업지원실, 국제협력실 등 1본부 2실 체제로 바뀐다.


대신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한다. 기존 경제·산업본부의 정책연구기능을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해 대기업 이슈에 국한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국가적 어젠다의 해법을 찾는 데 기여할 방침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세번째) 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세번째) 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이와 함께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활동내역과 재무현황 등을 홈페이지에 연 2회 공개해 공익법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기자브리핑을 통해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단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앞으로 국민과 회원사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전경련 구성원 모두가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혁신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던 전경련의 빈자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중견기업의 입장을 주로 대변해온 대한상의는 최근 대기업위원회를 만들기로 내부 검토를 마치고 대기업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한상의는 ‘제2의 전경련’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경제발전에 애쓰는 대기업들의 투명한 소통창구가 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조직·인력 축소 불가피한 선택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혁신안으로 환골탈태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많다. 이들은 전경련의 조직·인력 축소가 재정의 70% 이상을 담당했던 삼성·현대차·SK·LG그룹 등 4대그룹이 이탈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진 조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앞서 전경련의 쇄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전례도 있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차떼기'로 알려진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휘말렸을 때도 전경련은 대대적 조직개편과 혁신선언으로 새출발을 다짐했지만 결국 헛된 구호에 그쳤다. 

이번 쇄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사용한 점도 지적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 2월17일 총회에서 39개 기업 또는 단체가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안건을 처리했고 이 중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주한영국상공회의소 등 해외경제단체가 포함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경련 회관. /사진=뉴스1 DB
전경련 회관. /사진=뉴스1 DB

이어 지난달 28일에도 재차 전경련에 해외경제단체가 신규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언론을 통해 알렸다. 하지만 경실련이 확인한 ‘2016년 전경련 회원가입서’(11월11일) 상에 있는 회원리스트에 의하면 보도된 기업이나 단체 중 일부는 이미 소속된 단체들인데 마치 새로 가입한 것처럼 눈속임한 것이다.
경실련이 총회에서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안건으로 처리한 39개 기업 또는 단체 중 보도내용에 이름이 언급된 12개를 기존의 회원리스트와 비교한 결과 ▲삼양인터내셔날 ▲매일유업 ▲한화자산운용 등 10개는 이미 회원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고 주한인도상공회의소와 한불상공회의소 2개만이 리스트에 없는 단체로 판명됐다.

게다가 새로 가입승인했다던 농협하나로유통은 한달 만인 지난달 17일 전경련 탈퇴를 통보했다. 나아가 기술보증기금, 산업연구원, 세종문화회관 등 공공기관 19개도 탈퇴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경련은 정경유착 혐의가 드러날 때마다 사과와 쇄신약속을 거듭해왔으나 정경유착의 악습을 버리지 못했고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며 “이번 혁신안은 조직구조와 인적자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그동안 반복해온 쇄신약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체라는 근본적인 쇄신을 외면하고 조직유지를 선택한 전경련이 과연 쇄신의지가 있는 것인지 진정성에 의심이 든다”며 “이번 혁신안은 들끓는 해체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국민을 눈속임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반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장 문제가 된 정경유착은 기업의 문제도 있지만 기업을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권력자의 의지가 더 큰 문제”라며 “쇄신에 착수한 전경련이 탈퇴한 기업들이 다시 가입하고 싶은 경제단체로 탈바꿈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