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내고 빚에 눌린 가계는 지갑을 꽁꽁 닫았다. 암울한 상황은 다음 정부에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온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줄어든 생산인구에게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머니S>는 만성불황의 터널에 갇힌 국민과 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정부정책, 나아가 대선주자들의 경제공약을 진단했다. 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선진국이 경기부양에 구사하는 전략을 살펴봤다.<편집자주>
국내 기업의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불황형 흑자’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가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매출은 그대로인데 이익만 늘어난 형태다. 기업들이 인력감축과 원가절감으로 이익을 낸 것이다.
또한 안으로는 채용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는 VIP고객 확보전략으로 불황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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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직무적성검사 고사장 응시자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
◆인력감축·원가절감 ‘이익 짜내기’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코스피 상장법인 533개사(금융업·분할합병사 등 73개사 제외)의 2016사업연도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은 121조3000억원으로 전년(105조5000억원)보다 15.02%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18.46% 증가한 80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2011년 이후 최대규모다.
반면 매출액은 1646조원으로 전년보다 0.80% 늘어나는 데 그쳤다. 매출액 상위 20개사의 지난해 연결매출액 합계는 897조1000억원으로 전년 909조6000억원보다 1.37% 줄었다. 기업별로는 한국가스공사(-18.98%), SK이노베이션(-18.27%), 현대중공업(-14.96%), 포스코(-8.78%), SK하이닉스(-8.51%) 등 매출액 상위 20개사 중 10개사의 매출액이 감소했다.
이처럼 매출성장률은 미미한 반면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통해 실적개선을 이뤘다는 뜻이다.
특히 적자폭이 컸던 건설·기계·조선·해운 등의 업종은 지난해 구조조정과 원가절감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적 턴어라운드를 나타냈다. IT(정보기술)와 정유·화학업종은 글로벌업체들의 구조조정으로 공급과잉 해소가 제품가격 마진을 끌어올리면서 이를 기반 삼아 성장했다.
코스닥 상장사 727개사 역시 매출액과 이익 모두 증가했지만 실속은 없었다. 매출액은 138조6000억원으로 6.3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7조4000억원, 순이익은 4조원으로 각각 6.40%와 8.37% 불어났다.
하지만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5.37%로 전년과 같았고 매출액 순이익률은 0.05%포인트 오른 2.89%에 그쳤다. 코스닥 상장사가 1000원짜리 물건을 팔아 남긴 영업이익은 약 54원, 손에 쥔 돈은 30원이 채 안된다.
◆빗장 잠그는 기업, 채용시장 ‘한파’
내수 부진과 국내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이어지자 기업들은 채용시장의 빗장까지 걸어 잠갔다. 우리나라 대기업 5곳 중 한곳은 올 상반기에 아예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았고 지난해보다 채용규모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17년 상반기 500대 기업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응답 기업 200곳 중 18곳(9.0%)은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27곳(13.5%)은 지난해보다 신규채용을 줄인다고 답했다. 둘을 합치면 22.5%다. 상반기에 신규채용을 늘린다고 응답한 기업(11.0%)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채용하지 않거나 전년보다 줄인다는 기업 비중은 2015년(11.6%)과 지난해(11.5%)에 비해 두배 수준으로 뛰었다.
대내외적 여건악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여파가 지속되고 다음달 대선이 치러진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해외변수도 기업의 채용을 막고 있다.
올 상반기 대기업 채용문은 더욱 좁아졌다. 취업준비생이 가장 주목하는 삼성 계열사 중 삼성카드·중공업·엔지니어링·물산(건설부문) 등이 올 상반기 공채를 진행하지 않는다.
채용인원도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이 계획한 채용인원은 전년과 비교해 8.8%(2862명) 감소한 3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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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를 위해 마련된 한 백화점 라운지.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
◆VIP고객 모시기로 불황 탈출 안간힘
기업들은 불황 탈출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은 불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최상류층을 상대로 ‘VIP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인다.
백화점은 VIP고객 모시기에 사활을 걸었다.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국내 주요 백화점은 자스민, 프레스티지, 트리니티 등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인 VIP 회원제를 운영해 일반고객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한다.
금융권의 ‘VIP고객 잡기’ 노력도 눈물겹다. 일정수준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은행들이 PB서비스의 자산기준을 낮추는 추세다. 과거에는 자산기준이 3억~5억원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3000만원 이상으로 하향조정됐다. 카드사들은 고액자산가를 겨냥한 카드를 잇따라 내놓고 보험사는 고액자산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에 도움을 주는 상품을 선보인다.
이 같은 VIP마케팅의 영향으로 소비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에 도움이 되는 부자를 대상으로 ‘귀족마케팅’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경기불황에 소비자 주머니 사정이 양극화된 만큼 마케팅도 중산층과 상류층에 따라 달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