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지분투자로 설립한 해외거래소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인다. 해외거래소의 오랜 적자는 한국거래소의 손실 규모를 키울 뿐 아니라 외국에서의 한국거래소 신뢰도를 실추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라오스거래소 투자금, ‘73%’ 까먹었다
“지난해까지 라오스거래소에 최소한 상장사 15개를 유치하고 일평균 거래량 100만주를 달성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겠다.” 한국거래소가 2012년 밝힌 라오스증권거래소(LSX)의 비전이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의 목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라오스거래소는 지난해까지 약 6년간 5개 기업을 상장시키는 데 그쳤다. 지난해 일평균 거래량도 목표치에 한참 미달하는 9만주에 불과하다. 라오스종합주가지수는 지난 12일(현지시간) 1096.46으로 기준시가 1000포인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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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는 지난 6일(현지시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쉬하바드증권거래소(AGB)와 증권시장 개설 관련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라오스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2010년 라오스 중앙은행과 손잡고 처음 문을 연 이후 매년 수십억원 규모의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라오스거래소의 영업수익(매출)은 3억1721만원으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당기순손실도 19억903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6년간 누적 적자 규모는 140억원에 이른다.
라오스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49%를, 라오스 중앙은행이 51%의 지분을 보유한 합작법인이다. 라오스가 토지와 건물을 제공하고 한국거래소가 IT 시스템 인프라 구축과 증시개설, 인력교육을 맡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한국거래소의 라오스거래소 취득원가는 초기 1000만달러를 투자한 이후 몇차례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현재 145억원까지 늘어났다. 유상증자는 라오스거래소 설립 당시 라오스 중앙은행과 상황에 따라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라오스거래소의 적자가 매년 이어지는 만큼 추가 투자가 진행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실제 2012년 한국거래소는 라오스거래소의 운영자금 지원을 위한 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후 더 이상 출자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해에도 10억원가량의 자금을 또 투자했다.
투자금액은 점차 늘고 있지만 라오스거래소가 흑자로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아 회수할 수 있는 투자금이 계속 줄어드는 실정이다. 한국거래소는 2014년 처음으로 라오스거래소의 출자금 중 29억원가량을 손실로 처리한 이후 매년 손실을 장부가에 반영했다. 지난해 기준 라오스거래소의 회수 가능 장부가액은 39억원으로 거래소가 투자한 총액의 27%에도 못 미친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라오스거래소는 2020년에 흑자전환 할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 나갈지는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 상장사 주가↓… 한국거래소 신뢰도↓
이 같은 사정은 한국거래소의 또 다른 지분투자처인 캄보디아증권거래소(CSX)도 다르지 않다. 캄보디아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현재 4개에 불과하다. 2012년 4월 캄보디아의 수자원공사 격인 프놈펜상수도공사(PWSA)의 상장을 시작으로 그랜트윈(GTI), 프놈펜항만공사(PPAP), 프놈펜특별경제구역(PPSP) 등이 1~2년의 기간을 두고 상장에 나섰다. 상장사가 적다 보니 거래량도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전체 증시 하루 평균거래량도 1만주를 겨우 넘는다. 라오스거래소보다 훨씬 낮은 거래량에 비춰볼 때 캄보디아거래소의 손실도 만만찮을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거래소는 2012년 한국거래소와 캄보디아 재정경제부의 합작 투자로 설립됐다. 한국거래소는 약 102억원을 출자해 캄보디아거래소의 지분 45%를 보유 중이다.
특히 무리한 해외진출로 금전적인 손실뿐 아니라 한국자본시장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투자자의 이미지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캄보디아 상장사의 기업가치가 나쁘지 않음에도 거래가 원활하지 않은 시장에 상장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캄보디아거래소에 상장한 4개 기업의 현재 주가는 모두 공모가를 밑돈다. 이를테면 캄보디아증시에 처음 상장한 PWSA의 공모가는 6300리엘(KHR)이다. 하지만 상장 후 줄곧 하락세를 이어와 지난 13일 기준 4060리엘까지 떨어졌다. 공모가 대비 35% 낮은 수준이다. PWSA의 EPS(주당순이익)가 매년 10~20% 가까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주가가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외신에서는 “PWSA의 주가가 떨어진 원인은 죽은 시장인 캄보디아증시에 상장했기 때문”이라며 “해외 증권거래소 진출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한 한국거래소가 캄보디아거래소를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선점 효과 있다”
한국거래소 측도 해외거래소의 지속적인 적자를 인지하지만 특별한 대응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된 투자가 소규모로 이뤄졌고 현지 사정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1950년대 증시가 개장한 이후 1970년대까지 지지부진했고 베트남도 1996년부터 도와줬는데 20년이 걸려서야 실적이 났다”며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자본시장도 섣불리 현재 시점에서 재무적 상황을 판단하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본시장 발전 초기에 우리 증시 인프라를 도입하면 앞으로 시장 규모가 커졌을 때도 우리 기술을 쓰게 된다”며 “장기 전략적 관점에서 선점효과가 있음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거래소의 해외진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한국거래소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쉬하바드증권거래소(AGB)와 증시설립과 관련한 상호협력을 주요 골자로 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경제협력 공동위의 일환으로 구체적 협력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앞으로 투르크메니스탄에 증시운영과 인력교육, IT 시스템 노하우 등을 전수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한국거래소의 해외진출은 9개국, 15건에 달한다. 앞으로 한국거래소가 일부 국가의 적자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글로벌 거래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