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다.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GPS(위성항법장치)와 스마트폰 등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 위치추적은 물론 지능형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며 변신을 시도 중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공업 중 하나인 철강산업은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치며 거침없이 성장했지만 변화에 둔감하고 새로운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설비와 주력제품의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이어트로 몸집이 가벼워진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아 ‘효율’에 주목한 것.
업체들은 ICT 도입의 가장 큰 이득으로 자금이 새는 곳을 제대로 파악해 빠르게 막을 수 있게 된 점을 꼽는다. 제품 유통의 모든 과정을 살핌으로써 중간과정에서의 부정행위를 원천 차단한 점도 긍정적 효과 중 하나다.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유통이 투명해짐으로써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진 건 보너스다.
◆전기로업체의 고민, 철스크랩
예전엔 업계 관계자들조차 최종제품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요즘엔 원재료의 산지까지 확인한다. 이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의 영향도 한몫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철스크랩 등은 원재료에 고열·고압을 가해 제품을 만들어도 방사능이 줄지 않기 때문.
철스크랩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철제품을 만들고 남은 조각을 뜻한다. 고철이나 철근도 포함되며 형태도 다양하다. 전문취급업체나 고물상이 모은 것을 철강업체로 옮겨 용광로에서 가공하고 주로 주물을 만들 때 쓴다. 따라서 스크랩의 소재에 따라 분류작업이 필요하고 다양한 곳에서 조각이 모인 만큼 이물질에 오염된 정도도 체크해야 한다. 체크를 마친 철 부스러기를 배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악용한 경우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강업계의 비용지급방식 때문에 일부 중개업체와 차주가 운송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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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동국제강 에코 아크로, 세아베스틸 군산 전기로, 포스코 광양제철소 CGL 내부. /사진제공=각 사 |
철스크랩 운송비는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지불하는 게 업계의 관례다. 하지만 이를 증빙하는 자료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수증뿐이었다. 이에 일부 비양심적인 납품업체와 차주가 가짜 영수증을 제출하며 비용을 과다청구하기도 했다. 또한 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스크랩 안에 이물질을 넣어 밀봉하거나 압축하는 꼼수도 자주 쓰였다.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고로업체와 달리 철 조각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업체는 철스크랩의 품질에 따라 울고 웃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유통이력관리가 중요함에도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한 게 실상이었다.
◆GPS로 추적하니 부정행위 '뚝'
해법은 ICT에 있었다. 철강업체들이 철스크랩 운반트럭에 GPS를 부착하기 시작하자 운송과정이 급속도로 투명해졌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철스크랩 GPS를 가장 먼저 도입한 건 현대제철로 2013년의 일이다. 지난해엔 동국제강이 적용했고 올해는 세아베스틸이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세 회사의 철스크랩 물량을 합하면 전체 유통량의 60%가 관리대상에 포함된다. 다른 제강사들도 조만간 GPS 활용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신고제도가 마련되고 업체들이 GPS추적시스템을 활용한 결과 심각한 부정행위가 크게 줄었다”면서 “앞으로 사소한 위반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업체들의 GPS 도입효과는 확실했다. 2014년 6~7건에 달하던 심각한 부정행위가 2015년 2건, 지난해는 1건으로 줄었다.
기대효과는 또 있다. GPS 기록을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축,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경상남도에서 철스크랩이 발생했는데 경기도에서 소비가 많이 일어날 경우 경기지역에서 직접 수급하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스크랩의 종류를 분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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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전기로. /사진제공=현대제철 |
나아가 운송트럭의 빅데이터가 수집되면 철강업체와 철스크랩업체가 물류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결국 업체는 물류비와 배송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철강협회 입장에서도 지역별 제품등급별 수집량을 파악할 수 있고 해당 정보를 업체와 공유할 수 있다. 부스러기나 고물로만 여겨진 철스크랩의 가치가 ICT를 만나 한단계 높아지는 셈이다.
◆ICT로 생산과정 효율화
국내 철강업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ICT를 활용하는 곳은 포스코다. 생산과 물류 등 전 과정에 걸쳐 혁신을 추구한다. 사물인터넷(IoT)과 GPS로 제품의 이동과정을 추적하고 이력을 확인하는 건 기본이고 첨단센서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도금량을 정밀제어하는 기술도 도입했다. 이른바 ‘스마트팩토리’다.
현대제철도 ‘똑똑한’ 공장을 만든다는 맥락에서 포스코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IoT를 활용한 자동화설비를 갖췄으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생산과정에서의 오류를 줄였다. 또 GPS를 이용한 물류 추적시스템으로 운송시간을 단축시켰다.
이처럼 국내 철강사들은 ICT를 빠르게 흡수, 다양한 원가절감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품의 기획과 설계단계부터 생산과정에서의 효율화를 넘어 원재료와 완제품의 이동상황까지 체크한다. 업체들은 ICT를 통해 모든 과정에서의 낭비를 줄임으로써 급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체력을 기르는 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