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임직원 모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해 경영정상화를 위한 발걸음을 한걸음씩 내딛겠다.” 지난 18일 마지막 사채권자 집회 직후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이같이 밝혔다.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과 사채권자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만들어준 기회인 만큼 회사 측은 ‘기필코 살아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하지만 정상화의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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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
◆ 위기 넘긴 대우조선, 올해 흑자달성한다
국책은행으로부터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고 불과 1년6개월 만에 다시 유동성 부족 사태를 맞은 대우조선의 채무재조정에 사채권자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쳐왔지만 결국 ‘대마불사’를 선택했다. 법정관리에 보내는 것보다는 정상화의 기회를 주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란 생각에서다.
채무재조정을 완료한 대우조선은 본격적인 경영정상화에 돌입한다. 정성립 사장은 당장 올해부터 흑자를 낼 수 있다고 공언한 상태다. 확보해 놓은 일감이 있어서 건조와 양도만 차질 없이 마치면 적게나마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이번 채무재조정 성사로 대우조선은 한동안 유동성 시름에서 벗어나 경영정상화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무담보채권 대부분이 출자전환됐고 남은 채무도 상환이 3~5년 유예됐다. 운용자금이 없어 선박건조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없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채무재조정안이 법원인가절차를 마치는 즉시 대우조선에 2조9000억원 규모의 한도대출을 열어준다.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으로 대우조선은 선박건조 비용과 협력업체 납품결제대금 등에 언제든 이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자금운용에 여유가 생기며 소난골 드릴십 인도문제 등 현안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대우조선에 시추선(드릴십) 2기를 헤비테일 방식으로 발주한 소난골은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인수를 미루고 있다. 여기에 묶인 자금이 1조원에 달해 대우조선 유동성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간 소난골은 대우조선이 아쉬운 사정임을 이용해 한 기당 인수가를 1억달러 인하해 달라는 등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소난골 손실은 이미 지난해 결산에 반영했고 중고로 내다파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가정한 상태”라며 “더 이상 협상에 끌려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험난한 ‘계속기업’의 길
다만 단기적인 흑자를 내는 것과 지속가능한 계속기업으로 존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속되는 조선업 불황 속에서 대우조선이 독자생존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혈세 지원과 채권자들의 고통감내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정부가 구조조정방안에서 대우조선을 작지만 튼튼한 회사로 거듭나게 한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부는 적극적인 다운사이징으로 지난해 말 기준 매출 13조원 규모의 회사를 2021년까지 6조~7조원 내외로 축소하고 영업이익을 흑자로 돌려놓는다는 계획이다. 계속기업 가치가 확보되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매각해 우리나라 조선업을 빅2체제로 개편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정부는 대우조선이 독자생존에 성공하려면 규모를 줄이고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만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험성이 높은 해양플랜트 수주는 사실상 배제하고 경쟁력을 가진 고부가상선과 방산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짤 방침이다.
자구안 이행도 계속기업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내년까지 총 5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추진중인 대우조선의 이행률은 현재까지 34%에 그친다. 더욱 엄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기존 채권단 관리체제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민간 경영체제로의 변환을 추진 중이다. 조선업 전문가, 회계·법률전문가 등이 참여한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가칭)를 수립해 방만경영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정상화 작업의 또 다른 걸림돌은 수주다. 일감이 끊기면 조선사는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앞서 삼정KPMG는 대우조선해양 실사보고서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예상치를 올해 20억달러, 내년 54억달러, 2019~2021년 72억~77억달러로 잡았다. 수주목표가 아닌 독자생존을 위한 최저치의 가정인데, 이마저도 2018년 이후 시황개선을 전제로 한 만큼 낙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정상화방안이 이행되며 수주를 위한 여건은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우조선은 은행권의 선수금환급보증(RG) 확보가 어려워 수주에 더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부턴 경쟁입찰에는 제대로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화방안 이행으로 국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시중은행이 35억달러 한도의 RG와 12억달러의 외국환을 공급하기로 하며 경쟁입찰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우조선이 타개해야 할 돌발변수는 많다. 과거 분식회계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리스크도 그 중 하나다. 주식투자 피해자들이 주로 진행하던 소송에 회사채 투자자들까지 가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일본과 EU 등이 대우조선 지원방안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보조금 지원규정을 위반했다며 반발하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이 사안이 통상분쟁으로 번질 경우 소송비용 부담이 발생함은 물론 소송에서 정부보조금 판정을 받을 경우 수주활동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 지원에 대한 일본과 유럽 등의 반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수주사업의 특성상 정부 지원을 단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경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