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344조원 시대. ‘기업이 성장하면 가계도 돈을 벌 것’, ‘빚내서 집 사라’ 식의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금융정책기조가 180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을 기조로 하는 ‘J노믹스’의 문이 열려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의 시작은 부채성장 기조 정책에서 시작됐다. 기업부문의 국내총생산(GDP)이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가계총소득은 실질성장률보다 훨씬 낮다”며 “결국 낙수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J노믹스 금융정책은 서민중심정책에 초점을 뒀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가계부채 1344조원 시대’를 해결하기 위한 3대 근본대책과 7대 해법을 제시했다. ‘빚내서 집 사라’로 요약된 지난 정부의 가계금융정책의 폐단을 바로잡아 ‘부채주도에서 소득주도 성장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1대 근본대책으로 내세웠다.
여러 해법 가운데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현행 연 27.9%의 대부업법 최고금리를 연 20.0%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해 서민 고금리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자칫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저신용 서민이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최고금리 인하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류라는 분석이 팽배하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까지 이와 관련된 공약을 내걸었을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고금리를 점진적으로 내리되 사회보장제도 강화, 금융복지 확대 등의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 위하려다 서민 내몰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는 연 25.0%로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대부업법 최고금리(27.9%)를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25.0%)로 맞추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모든 금융회사가 대상인 대부업법에 비해 이자제한법은 개인간 거래에만 적용된다. 단기적이든 중장기적이든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 대부업계는 최고금리를 단계적으로 내릴 운명에 놓였다.
하지만 우려가 만만찮다.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어서다. 금융회사가 대출심사를 더 깐깐하게 하면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이 제2금융권으로 밀리고 제2금융권에서 외면받은 사람은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 경우 기존 대부업을 이용했던 저신용자는 제도금융권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에서 쫓겨나 불법 사금융으로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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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초 법정 최고금리가 연 34.9%에서 현행 연 27.9%로 인하된 이후 대부업 이용자가 우량화됐다. 대부업체를 이용한 4~6등급자는 2015년 말 33만9000명에서 지난해 말 35만9000명으로 5.9% 늘어난 반면 7~10등급자는 같은 기간 92만6000명에서 84만9000명으로 8.3% 감소한 것.
불법 사금융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대부협회가 지난해 10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약 43만명이 총 24조1000억원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5년 8월 같은 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33만명이 10조5000억원 불법사금융 이용 추정)보다 이용자가 약 30%(10만명), 대출금액은 약 130%(13조6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2010년 법정 최고금리를 연 29.9%에서 연 20.0%로 낮춘 일본에서도 불법 사금융 피해가 크게 늘었다. 도우모토 히로시 도쿄정보대학 교수는 2015년 발표한 ‘대부업법이 초래한 부작용’ 보고서를 통해 불법사금융 피해자 수가 2009년 42만명에서 2011년 58만명으로 늘었다고 추정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서민의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시장원칙을 해치면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며 “각 업권의 금리상한제 도입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한데 대부업법 최고금리를 무조건 낮추면 많은 서민이 금융혜택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복지·사회안전보장제 확대 병행해야
그럼에도 법정 최고금리는 인하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우리나라 금리산정체계가 채권자 위주인 만큼 소비자 위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최고금리 인하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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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최고금리를 내리기 전 여러 제도적 보완책과 중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부채 증가폭을 줄이고 단기적으로는 대출총량 규제뿐 아니라 채무조정 등 복지차원의 금융정책을 뒷받침해 빚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부채주도에서 소득주도 성장정책으로 전환’이라는 J노믹스의 근본 금융대책 방향설정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새 정부는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과 관련한 실무적인 보안책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금융복지와 사회안전보장제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부채를 줄여야 하지만 집값 상승률이 워낙 높아 당분간 힘들 것”이라며 “햇살론, 바꿔드림론, 사잇돌 등의 금융복지책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지금은 대출자 신용등급에 맞춰 대출이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자금용도, 나이 등을 따질 수 있도록 대출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고금리를 낮추면 이자 부담을 줄여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효과와 대출창구가 막히는 부작용이 함께 따라올 것”이라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복지로 보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금융회사뿐 아니라 정부도 자금마련의 창구가 될 수 있는데 사회보장제를 확대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류 연구위원은 “여기엔 세금 이슈가 포함돼 철저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형구 금융국장은 “저신용 서민층의 대출 목적은 대부분 소액의 긴급자금 마련이다. 이들이 급전이 필요한 요소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인 보완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바로 최고금리를 인하하면 오히려 피해받는 서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