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진흥원 자본금 /자료=서민금융진흥원
새정부의 금융정책이 민생과 밀접한 서민금융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새정부 공약 가운데 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서도 별도의 법 개정이나 예산확보가 필요하지 않은 서민금융에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서민들의 연체채권을 보유한 국민행복기금과 서민금융진흥원을 중심으로 채무 탕감을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지난 4월부터 국민행복기금 대상자 가운데 15년 이상 장기연체자를 대상으로 원금의 최대 90%까지 감면했다.
문재인정부가 행복기금 취지를 살려 10년 이상 연체한 채권을 소각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운 만큼 서민금융진흥원이 장기연체를 탕감하는 정책을 흡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민금융 컨트롤타워인 서민금융진흥원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제2의 국민행복기금' 나올까, 실효성 논란 여전
금융권은 서민 연체채권을 매입하고 채무를 조정해주는 '제2의 국민행복기금'이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회복기금을 전환해 출범한 법인이다. 2013년 3월 국민행복기금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지난해 9월 서민금융진흥원이 국민행복기금 지분(68.28%)을 이관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국민행복기금은 공적채무조정의 성격을 갖는 법인이지만 엄연한 주식회사다. 은행권 출자로 만들어져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은 법 개정 없이 소각할 수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2013년 2월 말을 기준 연체기간 6개월 이상, 채권 규모 1억원 이하인 개인신용대출 채권에 대해 빚 탕감을 해준 바 있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월소득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 대다수는 또다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나 실효성 논란이 여전하다.
국회 정무위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및 연체현황’ 자료를 보면 국민행복기금은 출범직후부터 현재까지(2013년 3월29일~2017년 3월31일) 약 4년간 58만1000명의 채무를 조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원금은 6조4165억원이며 채무조정을 통해 2조8874억원으로 감면 받았다.
하지만 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고도 3개월 이상 연체해 또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된 사람은 10만6000명으로 전체의 18.2%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금액으로 보면 채무불이행 상황은 더 심각하다. 채무조정을 받은 금액 전체 2조8874억원 중 1조113억원(35%)에 달하는 금액이 연체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된 사람의 85.7%는 월소득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으로 드러났다. 취약계층의 채무회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민행복기금이 정책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또다시 채무불이행자를 만들어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민병두 의원은 "국민행복기금은 상당수의 저소득층을 또다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시키며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단순감면보다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확실한 채무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지난달 국민행복기금과 채무조정을 약정하고 채무조정심의위원회를 통해 실제 상환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인정받은 연체자들의 원금을 감면했다"며 "새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정책의 자격기준과 차이가 있지만 채무조정을 받고도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서민을 줄이기 위해 행복기금 채무조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9개월, 금융회사 또 출자 나서나
서민금융진흥원이 소액·장기연체 채권 소각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에 또 다시 출자를 요구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진다.
진흥원은 자영업자 중심으로 대출해온 미소금융중앙재단의 기능과 서비스를 확대·보완해 간판을 바꾼 조직으로 금융협회와 금융지주사, 금융권 비영리법인 등에서도 진흥원 출자가 가능하다. 그러나 매번 정권교체 때마다 금융회사에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출연을 요구해 부담이 컸던 탓에 진흥원 출자에 참여한 금융회사의 출자가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캠코와 KB국민·NH농협·우리·신한·KEB하나은행 등 5대 은행과 23개 생명보험회사 11개 손해보험사가 진흥원에 출자한 금액은 148억원으로 당초 금융회사들이 출자키로 한 200억원에 못 미친다.
캠코와 5대 은행은 각각 20억원씩 출자해 계획보다 5억원 줄었고 생보사와 손보사들도 진흥원 출범 시 각각 17억원, 11억원을 출자한 이후 추가 출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진흥원 출범 시 금융회사에 추가 증자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공헌했지만 진흥원에 서민금융 지원정책이 쏠린 터라 또 다시 출자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서 미소금융중앙재단에 휴면예금 수천억원을 출현했고 은행 브랜드를 붙인 재단도 만들었는데 서민금융의 명목으로 갹출이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아직 정부의 소액·연체 채권 소각 방침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당국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도 없다"며 "금융회사의 출자 역시 당국이 정할 부분으로 진흥원의 소관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