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입장에 서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다들 만류했지만 저는 그들이 빛나도록 돕고 싶어요.”

문을 연 지 이제 두달이 갓 넘은 법률사무소 메이데이의 유재원 대표 변호사의 포부는 분명하고 힘이 넘쳤다. 그는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 합격 뒤 국방부 법무관리실 규제개혁법제담당 행정사무관, 국회사무처 법제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조사관을 거치며 근로환경과 산업재해, 처우개선 등에 관심을 가졌다. 커진 관심을 직접 실천에 옮길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힘든 길을 택했다. 그를 움직인 건 힘든 만큼 보람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근로자가 빛나도록 돕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확고했다.

유재원 메이데이 대표 변호사. /사진제공=메이데이
유재원 메이데이 대표 변호사. /사진제공=메이데이

◆사해형제, 우리는 모두 한 가족
“동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구나 ‘사해형제’(四海兄弟)라는 생각으로 큰 연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대뜸 중국소설 <수호지>의 한 구절을 언급했다. 일탈한 군상들이 다양한 호걸과 규합될 때마다 외친 이 말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가 바라보는 국내 근로환경은 열악하다.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활동이지만 언제나 사회에서 소외됐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근로자·사용자·정규직·비정규직 등의 구분 없이 모두가 동등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늘 각자의 위치에서 대립했고 상처받았다.

누구는 ‘노조탄압’과 ‘노동3권’을 말하고 누구는 ‘노동권 과보호’나 ‘노조의 정치화’를 주장하며 대립해 ‘모두가 함께’라는 생각은 뒷전이다.

그는 국회 환노위에서 일할 때 근로자의 반대 측인 근로복지공단·고용노동부 입장에서 사업과 법률을 검토했지만 이제는 그쪽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진정도 내며 반대편에 섰다. 양쪽을 다 경험했지만 결국 ‘모두가 함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수호지>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송강이 무송을 만났을 때, 노지심이 양지를 만났을 때도 그들은 부딪히고 싸웠지만 결국 ‘세상이 모두 형제’라는 말을 나누며 부둥켜안았다”며 “거칠고 뜨거운 현실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마주한 모두가 행복한 일터, 건강한 노동이 가능한 세상을 위해 큰 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가치를 찾아주고 싶다”

모두가 사해형제의 마음을 품는 것은 쉽지 않다. 양쪽을 마주한 법의 문턱은 늘 높고 딱딱하다. 근로자보단 사용자 측에 상대적으로 더 익숙하고 편리한 게 법이다.

법을 더 잘 아는 그들은 항상 법을 이용해 근로자를 괴롭혔다. ‘모두가 함께’라는 사해형제의 바람 속에서도 그가 근로자의 고충을 더 듣고 그들의 마음을 더 헤아리려는 이유다.

그래서 그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친근하게 법에 다가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법과 역사를 접목한 책 <어린이 로스쿨> 시리즈를 펴내며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사람들에게 법은 가깝고도 멀어요. 딱딱하고 어려운 법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고 싶었던 마음을 책에 담았죠. 어릴 때부터 익숙해지면 위축되지 않고 법과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어려운 법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쉽게 풀어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근로자와 어려운 법을 연결해주는 소통창구를 자처한다. 조금 수준을 높여 중고생이나 어른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은 집이 아닌 직장이에요. 그래서 인간관계, 처우, 근로환경, 이런 부분이 중요한데 문제가 생기면 복잡하고 어려운 법을 외면하기 일쑤죠. 그들의 가치를 찾아주고 빛나게 해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김창성 기자
/사진=김창성 기자

◆진정한 ‘메이데이’를 꿈꾸다
그의 법률사무소 이름은 ‘메이데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 단어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사실 위기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상황을 알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말이다.

영화 속 항공기 사고 등에서 조종사가 무전으로 "메이데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봤다면 이해하기 쉽다. 유 변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법률사무소 이름을 메이데이라고 지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이 메이데이를 외치면 늘 가까이에서 돕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이 사상최대인 1조4000억원을 넘어선 심각한 상황을 그가 풀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근로자의 외침인 메이데이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지만 의지는 확고하다.

“전체 1780만명에 달하는 근로자 중 1000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비정규직·중규직임에도 사측의 부당행위나 갑질을 대하는 사회적 관심이 너무 낮은 게 현실입니다. 우리의 인식 개선과 원만한 사회적 타협을 위해 저부터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어릴 때 꿈이 역사학자였던 그는 대학 전공도 역사학을 선택했지만 입으로만 사회개혁을 논하고 실천하지 않는 세태를 보면서 세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자신부터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3년이 채 되지 않아 합격했다. 2011년에는 공인노무사 시험도 합격해 기반을 더 다졌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그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항상 되새긴다.

“근로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가 뒤에서 어려운 부분을 받쳐주고 싶어요.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이 행복한 세상의 첫걸음이라 믿기 때문이죠.”

그의 바람은 단순하지만 단호하다. 메이데이가 근로자의 구조신호가 아닌 진정한 근로자의 날로 다가올 날을 꿈꾸며 오늘도 그는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5호(2017년 7월5일~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