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카드가 8개월 넘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요구한 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신용카드사는 지난해 10월 비자카드의 해외이용수수료 인상과 관련해 계약이 불공정거래에 해당된다며 비자카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공정위는 비자카드의 계약 위법성 여부가 있는지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비자카드가 요구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검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일 공정위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비자카드 불공정거래 조사가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조사하는 곳은 비자(VISA)의 한국지사(비자코리아)가 아닌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지사다. 공정위는 비자 아태지사로부터 불공정거래 여부를 따지기 위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답보상태다. 공정위가 제소건에 대해 조치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통상 6개월정도. 하지만 비자카드 건의 경우 8개월이 넘게 검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아태지사로부터)자료를 두 차례 받았지만 요구자료가 아니어서 지난주 다시 요청한 상태”라며 “이런 절차를 거치다보니 (비자카드의 공정거래법 위반여부 검토에 대한) 진행사항에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비자카드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자카드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제한적인 점을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아쉬울 게 없으니 공정위의 요구사항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미지=머니S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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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비자 아태지사를 상대로 벌일 조사 내용은 해외이용수수료에 대한 비자카드와 국내 신용카드사간 계약이 불공정한지 여부다.
해외이용수수료는 국내 고객이 해외가맹점에서 결제할 때 브랜드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다. 100달러어치 물건을 사면 101달러(수수료율 1%)가 결제되고 1달러를 브랜드카드사가 가져가는 식이다. 비자카드의 경우 지난해까지 1.0%의 수수료를 받다가 올해부터 1.1%의 수수료율을 부과하고 있다.

국내 8개 전업계 카드사는 비자카드가 해외이용수수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데 이는 시장지배적사업자(독점사)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공정위에 비자카드를 제소했다. 앞서 비자카드는 같은해 5월 종전의 해외이용수수료율 1.0%를 1.1%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공정위가 비자코리아가 아닌 비자 아태지사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려 하는 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해외이용수수료율 결정을 아태지사가 하기 때문이다.

비자카드의 공정거래법 위반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검토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카드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현재 비자카드의 해외이용수수료 인상분(0.1%)을 소비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직접 내고 있지만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카드사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수료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부과하면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을 카드업계가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수료 인상분을 카드사가 내고 있지만 영업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카드사가 계속 부담하기엔 힘들다”며 “(비자카드 건에 대한 공정위의 법률위반 검토) 기간이 길어질수록 카드사로선 (수수료 인상분을 원래대로 고객에게 부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거래 관계가 불공정하다는 카드사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가격(수수료)은 공급자(비자카드)와 소비자(국내 카드사)의 협상간 책정되는 게 아니지 않냐”며 “공정위가 비자코리아에 요청한 자료는 모두 제출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