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과 강원 삼척을 잇는 포항-삼척 철도건설 현장이 하도급업체의 부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4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후 파산한 대남토건이 공사대금을 가로채면서 재하청을 수주한 영세건설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인 것. 대남토건이 공사 중이던 현장만 15개에 달하는 가운데 포항-삼척 철도는 공정률이 30%에 못미쳐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최근 개통한 구리-포천 고속도로의 경우 대남토건이 공사를 맡았지만 부도 당시 공정률이 90%에 이르러 공사가 강행됐다.


[머니포커S] '삼척-포항 철도' 하도급 줄도산 위기

◆시공사 “우리도 피해자”… 보상 협의 난항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포항-삼척 철도공사는 내년 준공을 앞뒀다. 시공사는 두산건설과 갑을건설이며 두산건설이 지분 90%를 갖고 있다. 대남토건 부도 두달 만인 지난달 두산건설은 새 하도급업체인 특수건설과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특수건설이 맡은 공사금액은 226억원 규모다.

문제는 대남토건의 협력업체들. 공사가 중단되고 중간 하도급업체가 바뀌면서 앞으로 일감은 물론 그동안 일한 공사비마저 떼일 처지에 놓였다. 서울 소재 토목업체 A사는 포항-삼척 현장의 터널공사를 위해 발파자재를 납품하던 중 대남토건이 부도를 맞아 자재비와 인건비 약 32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일부 업체는 두산건설 측에 공사비의 30% 보상을 요구하며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업체 대부분이 더 많은 보상금을 요구해 협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A사 관계자는 “영세건설사나 개인사업자는 공사비를 다 받지 못하면 도산은 당연하고 직원들 임금도 지급하지 못할 처지”라며 “두산건설이 법적으로는 공사비를 지급할 책임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부라도 보상받겠다는 회사들이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두산건설은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법적 책임을 떠나 협력관계인 하도급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시공사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단 보상비율이 업체마다 다른 데다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면서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타당한 내부검토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두산건설에 따르면 대남토건과 계약한 공사금액은 200억원이며 이 중 23억원을 이미 지급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공사비 이중지급으로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공사가 지연된 데 따른 추가공사 비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시공사의 피해도 크다”고 말했다.


대남토건의 부도로 일부 공사가 중단됐던 소사-원시 전철공사 현장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이 현장은 대남토건 부도 당시 공정률이 80%로 약 22억원의 임금체불이 확인됐다. 일부 현장은 공사를 완료해 놓고도 돈을 받지 못했고 30억~40억원을 떼인 현장도 있다.


/사진제공=한국철도시설공사
/사진제공=한국철도시설공사
[머니포커S] '삼척-포항 철도' 하도급 줄도산 위기

◆계속되는 부실 하도급업체 선정 논란
그럼에도 발주처와 시공사는 특별한 조치 없이 공사 도중 또 다른 하도급업체와 계약하면서 대책마련에는 인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사-원시 현장 채권단의 조사 결과 대남토건은 2015년 공사비 8억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대남토건 직원과 퇴사자 100여명이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데다 오너 일가가 개인재산의 명의를 변경하고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원청업체가 하도급계약을 맺을 때는 시공능력뿐 아니라 기업평가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자기들도 피해자라며 발뺌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며 “법적 책임만 운운하지 말고 하도급업체의 공사비 미지급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는 등 고질적인 체불 문제의 원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공사가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는 것에 비해 발주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대부분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토목공사의 경우 심각한 예산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문제가 발생하면 발주처도 관리소홀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과 장비대금 직불제를 시행 중임에도 하도급 직불을 또 강제하는 등 원청업체에 대한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발주기관의 갑질”이라며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관계뿐 아니라 발주기관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공정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음 공공공사 입찰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우려돼 금전적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일부 주는 분리발주를 허용한다.


또한 시공사가 부실업체를 미리 인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1992년 설립된 중견건설사인 대남토건의 경우 2015년 매출액 1456억원, 당기순이익 5억원을 기록했다. 외부감사법인임에도 최근 재무제표를 제출하지 않는 등 문제점이 조기발견된 건 사실이지만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화를 불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20년 넘게 대규모 공사를 수행하던 대남토건이 쓰러진 건 충격이었다”면서 “최근 몇년 동안 토목공사가 불황을 겪으며 퇴출되는 곳이 점점 늘어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대남토건 사태로 피해를 입은 현장은 고려개발·대우건설·대림산업·두산건설·포스코건설·한진중공업 등 국내 대형건설사가 시공을 맡았다. 소사-원시 전철, 우이-신설 경전철, 상주-영천 고속도로, 원주-제천 전철, 장안-온산 국도 등은 공정률이 90% 이상인 반면 이천-충주 철도는 10% 수준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7호(2017년 7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