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결제시장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기존 신용카드사의 안방 무대로 여겨지던 이 시장에 핀테크(금융+기술)를 기반으로 한 ICT(정보통신기술)사업자의 진출이 활발하다. 미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종 페이를 선보인 유통업계는 최근 시장 선점을 위해 신용카드를 브랜드(PB·Private Brand)화하고 나섰다.
여기에 인터넷은행이 뛰어들어 시장을 더욱 달굴 전망이다. 인터넷은행은 신용카드사업자 인가를 받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며 ‘앱투앱 결제’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신용카드사는 결제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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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카드’ 주도권 노리는 유통사
지급결제시장 경쟁이 격화된 것은 소비패턴 변화에서 기인한다. 현금사용량이 줄고 신용카드사용량이 늘어나는 가운데 전자지급결제량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한국은행의 ‘2016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간편결제수단의 일평균 거래액은 401억원이다. 1분기(135억원)와 비교하면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현금 거래액(361조원)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한국은행이 “지난해 괄목할 만한 변화는 간편결제 등 신종 전자지급서비스 이용이 크게 늘어난 점”이라고 분석할 정도로 그 성장폭이 크다.
특히 유통·제조사(삼성페이·스마일페이·SSG페이·L페이 등 4곳)의 지급결제수단 이용 증가폭이 눈에 띈다. 1분기 63억원이던 일평균 사용액은 4분기 264억원을 기록, 4배 이상 증가했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자체 결제서비스를 활용하면 결제 시 밴사나 PG사 등 중간거래자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며 “글로벌 온라인쇼핑몰인 이베이가 간편결제서비스업체 페이팔을 자회사로 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급결제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각종 페이를 내세운 유통업계는 신용카드를 브랜드화하고 나섰다. 신세계는 최근 전북은행과 손잡고 PB 신용카드인 ‘SSG카드’를 출시했다. 보통 카드사와 유통사가 제휴를 맺으면 ‘신세계이마트삼성카드’, ‘이마트e현대카드’처럼 카드사 이름이 붙는다. 소비자로선 제휴사의 카드라기보다 카드사의 상품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PB카드는 신용카드에 카드사 이름은 빼고 제휴사 브랜드명만 노출시킨다.
신세계 관계자는 SSG카드 출시 배경에 대해 “서비스와 혜택을 카드사가 아닌 신세계가 주도해 기획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신세계가 PB카드를 출시한 게 2015년 7월 선보인 자체 간편결제플랫폼 ‘SSG페이’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SSG페이는 사용자 수가 지난해 7월 190만명을 돌파하고 지난 6월 말 400만명을 기록하는 등 지급결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SSG카드를 SSG페이에 등록 후 사용하면 결제액의 1.5%를 SSG머니로 적립해주고 신세계포인트도 0.1% 추가 제공한다. SSG카드가 사실상 SSG페이 특화카드인 셈이다. 고객에게 특화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SSG페이를 통한 결제비중을 높이고 지급결제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SSG페이 사용비중이 커질수록 신세계는 카드사보다 지급결제수단의 우위를 점할 것”이라며 “카드사로선 이 회사와 가맹수수료 계약 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지급결제 판도 바꿀까
인터넷은행 출범도 지급결제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주요 요인이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출범에 앞서 세로형 체크카드를 공개하며 화제를 낳았다. 전월실적과 관계없이 국내외 모든 가맹점에서 0.2%(주말·공휴일엔 0.4%)를 캐시백한다는 ‘카카오뱅크 프렌즈 체크카드’의 쏠쏠한 혜택은 잠재고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인터넷은행은 신용카드사업에도 진출해 지급결제시장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하반기 중 금융당국으로부터 신용카드업자 인가를 받기 위한 테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케이뱅크 관계자도 “시기를 정하진 않았지만 내년을 목표로 신용카드업자 인가를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행의 등장이 지급결제시장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앱투앱(app-to-app) 결제’ 서비스 때문이다. ‘직불계좌 거래’ 시스템으로도 불리는 이 결제방식은 중간 거래자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객에게 신용공여기능을 부여하는 신용카드와 달리 결제 발생 시 고객 은행계좌에서 곧바로 판매자의 계좌로 결제액이 입금된다는 점은 직불카드의 결제구조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존 은행·카드사의 신용·체크카드는 부가통신사업자(VAN사)나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를 거쳐 사용된다. 가맹점주가 중간 거래자에 수수료를 내야 하는 구조다.
반면 앱투앱 결제방식은 고객과 가맹점이 각각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면 그 앱을 통해 결제가 이뤄지는 식이다. 가맹점주로선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인터넷은행들이 앱투앱 결제방식에 신용공여기능을 어떻게 탑재할지, 즉 신용카드를 이 결제수단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카드사가 가장 큰 위협으로 꼽는 것도 이 부분이다.
카드사는 지급결제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앱카드를 선보이는 등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카드사가 모바일결제 협의체를 만들고 공동 근거리무선통신(NFC)단말기를 개발한 것도 그 일환이다. NFC는 카드나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가까이 대면 결제가 이뤄지는 기술이지만 앱카드의 경우 단말기와 호환이 안되는 등 불편함이 따랐다. NFC단말기는 오는 10월 전국 대형가맹점에 시범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사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스마트폰 결제 사용자가 늘고 있어 편리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동 NFC단말기를 개발한 것”이라면서도 “인터넷은행이 신용카드를 앱투앱 결제시스템에 어떻게 적용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결제망이 필요없는 방식이라면 카드사에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국내 지급결제시장을 보면 전자금융업체의 진출이 활발한 만큼 카드사의 설자리가 많이 줄었다”며 “카드사도 이를 인식해 빅데이터 역량 강화, 해외진출 등 비즈니스모델을 다각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9호(2017년 8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