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 간담회가 지난달 27~28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호프미팅’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열린 이번 간담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기업인 대다수가 새정부의 경제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규제 완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 등 요구사항도 확실히 전달했다. 다만 모든 참석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일부 기업은 정부정책과 대외여건 등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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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청와대 |
◆‘착한 기업’ 무언의 압박
“경제 살리기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상춘재 앞마당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 재계순위 짝수기업 기업인 7명과 중견기업 오뚜기 함영준 회장을 초청해 가진 만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기업인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에 대해 정말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세간에 알려진 반기업 정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또한 건배사에서 “기업이 잘 돼야 나라경제가 잘 된다”며 “국민경제를 위하여,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라고 외치기도 했다.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진행된 호프타임 때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직접 맥주를 따라 기업인들에게 전해주는 이색적인 장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각 기업인들의 취미 등 사적인 부분부터 경영상의 애로점을 묻는 등 맞춤형 질문을 하며 기업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각본, 주제, 시간 등을 미리 정하지 않고 문 대통령이 기업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선 기업인에게 민감한 법인세 인상이나 초고소득층 증세 추진 논란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기업인이 자사 사정에 맞춰 정부정책에 동참하는 방안을 내놓고 반대급부로 애로사항을 건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만 무언의 메시지는 전달했다. 재계순위 100위권 밖인 오뚜기를 14대 그룹과 함께 초청한 게 대표적인 예다. 간담회 현장에서도 오뚜기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함 회장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용이나 상속을 통한 경영승계, 사회적 공헌도 그렇고 ‘착한 기업’ 이미지가 이같은 말을 만들어 냈다”고 호평했다.
함 회장은 “굉장히 부담스럽고 송구스럽다”며 말을 아꼈지만 새정부 경제정책에 부합하는 착한 기업 이미지를 굳혔다. 실제 오뚜기는 올 1분기 기준 비정규직 비율이 1.13%에 불과하고 정규직 전환비율도 높다. 또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부문에서도 모범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호프미팅에 사용된 맥주로 중소기업인 세븐브로이맥주 제품을 선정한 것 역시 기업인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11년 맥주제조 일반면허 1호를 획득한 국내 최초 수제맥주기업 세븐브로이는 업계에서 비정규직 제로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븐브로이는 전체 임직원 34명 모두가 정규직이며 직원복지를 위해 청년직원 숙소 보증금 지원제도 운용 등 직원과 상생하는 중소기업으로 매년 꾸준히 성장 중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사상생, 중소기업 육성 등의 새정부 핵심 국정과제에 부합하는 기업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븐브로이 수제맥주 선정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전체 임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기업이라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14대 그룹 대표로 참석한 기업인들은 공통적으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협력업체와의 상생 기조에 협력할 뜻을 내비치면서도 규제 완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를 요청하는 등 실속을 챙겼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중국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향으로 매출이 줄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협력업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전기차, 자율주행차, 수소연료차를 개발하면서 국내외 스타트업과의 상생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할 텐데 이 과정에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철강수출 어려움을 토로했다. 권 회장은 “당분간은 미국에 보내는 것을 포기했다”며 “중기적인 대응으로 가닥을 잡고 여러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 ‘웃고’, 두산 ‘울고’
한화와 두산은 희비가 엇갈렸다. 탈원전시대를 예고한 새정부 방침에 태양광에너지 발전사업을 하는 한화는 사업 기회가 확대될 예정이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참여한 두산중공업은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금춘수 한화 부회장은 “태양광에너지분야에서 고전하던 터에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분야를 지원해줘서 힘을 받고 있다”며 “(시장점유율이) 5%가 안되지만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입지 조건 완화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비율의 상향조정을 건의드린다”고 말했다.
반면 박정원 두산 회장은 “만약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결정된다면 주기기를 공급하는 두산중공업의 매출 타격이 우려된다”며 “해외에서 사업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에서 3개월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 계속 건설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문 대통령의 탈핵 의지와 여론을 감안하면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뚜기와 세븐브로이를 통해 이른바 착한 기업에 대한 롤모델을 제시한 셈이라 대기업들도 이에 부합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별 사정이 다른 만큼 간담회 참석 기업들도 온도차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9호(2017년 8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