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17 도입준비위 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DB
IFRS17 도입준비위 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DB



보험사의 자본확충을 위한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쉬워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2021년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둔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요건을 완화했다. 그동안 ‘자본 적정유동성 유지 목적’으로만 발행이 가능했던 신종자본증권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 또는 적정 유동성 유지를 목적’으로 발행 허용범위가 넓어지면서 보다 적극적인 자본확충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형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의 모호성이 해소됐다며 반기는 분위기지만 중소형사의 입장은 다르다. 신종자본증권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시장수요가 많지 않아 발행해도 큰 효과를 얻기 어려워서다. 일부 중소형사는 지점 줄이기 등 구조조정으로 RBC(지급여력비율)를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중소형사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중소형사, 발행 효과? ‘글쎄’ 

2021년부터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주내용으로 하는 IFRS17이 시행된다. 회계제도 변경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보험부채가 급증하면 보험사는 자본잠식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국내 보험업계에서는 자본확충 러시가 이어졌다. 

한화생명은 지난 4월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생보사 ‘빅3’ 중 가장 먼저 IFRS17 대비에 나섰다. 교보생명도 지난 7월 총 5억달러(한화 56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전액 해외에서 발행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4월 5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으로 자본확충을 마쳤으며 손해보험사 중에선 현대해상과 동부화재가 지난 5월 각각 5000억원, 4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발행을 마쳤다.

보험사들은 그간 자본확충 수단으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후순위채 발행을 선호했다. 하지만 후순위채는 IFRS17에서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아 보험사로선 새로운 자본확충수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남은 선택지는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주주가 여력이 있는 곳은 유상증자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험사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유일한 방안”이라며 “신종자본증권은 금리가 높은 편이지만 부채 만기 시까지 100% 자본으로 인정돼 자본 유동성 부분에서 최적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의 자본확충을 위해 신종자본증권 발행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재연장이 가능하다. 또 기업입장에서는 구조조정을 피하고 장부상 부채비율만 내릴 수 있어 IFRS17 대비에 적합한 상품이다. 

하지만 중소형사들은 신종자본증권 발행 허용기준이 완화됐음에도 미소 짓지 못한다. 대형사와의 신종자본증권 발행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아서다. 

신종자본증권은 재무건전성이 탄탄한 회사라도 남발할 경우 부채부담이 커진다. 몸집이 작은 중소형사는 부담이 더 크다. 또 미국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시중금리 상승이 본격화되는 점도 중소형사의 고민이다. 

현재와 같은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 단기적으로 보험사의 보유채권 가치가 하락해 자본감소가 발생하고 그 결과 RBC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고금리인 신종자본증권이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영향을 받으면 중소형사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중소형사의 신종자본채권을 찾는 기관투자자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초장기채 상품 특성상 주요 투자처는 연기금이지만 투자대상에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은 편입되지 않아 투자를 꺼린다. 투자자 풀이 증권사나 공제회 등으로 협소한 셈이다. 

더욱이 올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채권에 투자가 몰리며 더 이상의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올해 발행한 한화·교보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완판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만 진행돼 국내 주요 투자처는 한화생명에 몰린 상태”라며 “신종자본증권 투자가 주로 보험사의 높은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중소형사가 투자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지급여력제도 대응도 문제

금융당국이 도입 예정인 신지급여력제도(K-ICS)도 중소형사의 고민거리다. 새로 도입될 K-ICS는 현행 RBC제도와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K-ICS는 부채평가방식이 IFRS17 도입에 맞춰 시가평가 기준으로 변경돼 보험준비금을 현재 금리수준으로 재평가한다. 

결국 보험사들은 과거 저금리 시절 계약했던 금리보다 더 높은 금액을 준비해야 하고 결국 자본확충부담이 커진다. 단순 제도 변화가 아닌 보험사 건전성 감독제도의 틀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K-ICS 필드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에 참여한 정해석 금융감독원 신보험리스크제도팀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K-ICS 도입 및 대응방안’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신지급여력제도 도입 시 보험사의 요구자본이 크게 증가하는 것 같다”며 “상품구조에 따라 회사별 요구자본이 10배가량 차이날 수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RBC가 200%를 넘지 못한 생보사는 KDB생명(128.4%), 흥국생명(162.2%), 동부생명(188.1%), DGB생명(191.0%) 등이다. 손보사의 경우 롯데손보가 161.3%의 RBC비율을 기록했고 한화손보(168.1%), 흥국화재(168.5%), 농협손보(186.4%), KB손보(188.3%), 현대해상(193.1%) 등도 RBC비율이 200% 미만이다. 

앞으로 K-ICS가 도입되면 요구자본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여 현재 RBC가 금감원 권고기준인 150% 이하인 보험사는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소형 생보사 관계자는 “구조조정 등 비용절감을 통한 내실 다지기를 진행한 후 K-ICS 도입 분위기 등을 살피며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4호(2017년 9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