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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권에서 일임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손실이 날 경우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다. 저조한 수익으로 외면받은 은행 ISA에 고객이 눈을 돌릴 지 주목된다.
일임형 ISA는 고객이 일일이 투자 상품을 고를 필요 없이 금융회사가 알아서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게 자금을 운용한 뒤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다. 신탁형 ISA와 달리 일임형 ISA에 은행은 0.5%, 증권사는 0.7% 정도의 수수료를 적용한다.
신한은행은 오는 10월 약관 수정 작업이 끝나면 금융투자협회 승인을 받아 '무수익 무수수료' 방침을 적용할 방침이다. 신규 가입자뿐 아니라 기존 고객에도 소급 적용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약관을 고치는 것이어서 ISA 약관 승인이 무리없이 통과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도 채비에 나섰다. 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도 일임형 ISA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 수수료를 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비과세 혜택 커진 ISA, 무수수료 혜택 통할까
시중은행이 일임형 ISA에 무수수료 혜택을 적용키로 한 것은 내년부터 ISA의 비과세 혜택이 늘어 고객들의 뭉칫돈이 몰릴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ISA 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일반형(연봉 5000만원 초과)은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서민형(연봉 5000만원 이하)은 2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ISA 비과세 혜택이 최고 두배까지 늘어 서민형에도 고객들의 가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시중은행은 일임형 ISA의 비중이 적고 현재 손실이 난 일임형 ISA가 거의 없어 무보수 방침을 적용하더라도 손해 볼 일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상 고객 포섭을 위한 마케팅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국내 ISA 가입자 수는 약 224만명, 투자금액은 3조9000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은행 ISA에 가입한 비중은 92%, 가입금액은 81%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반면 일임형 ISA에선 은행의 실적이 저조하다. 7월 말 기준 출시 3개월 이상 경과한 총 204개 일임형 ISA 모델포트폴리오(MP)의 누적수익률은 평균 6.6%로 집계됐다.
은행권에선 대구은행이 6.6%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우리은행(6.3%)과 신한은행(5.3%) 등도 양호한 성과를 기록했다.
◆수수료보다 수익이 먼저, 일임형 ISA 가입 시중해야
금융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일임형 ISA 무수수료 방침에 엇갈린 평가를 내놓는다.
먼저 투자자가 손실을 보면 금융회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란 평가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 보험업권에서도 일임형 ISA 수수료 면제를 검토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 ISA는 수익이 저조하면서도 수수료는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1월에는 일임형 ISA의 평균 수익률이 0.03%에 그쳐 당시 증권사와 은행의 수수료 각각 0.93%, 0.80%를 빼면 사실상 원금을 까먹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일임형 ISA의 수수료를 인하하는 조치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지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ISA의 비과세 혜택을 늘려 국민들의 재산증식을 도우려는 만큼 금융회사의 수수료 인하는 소비자에게 많은 수익을 안기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융회사가 받던 보수(수수료)를 없애면 투자일임서비스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와 '고객 끌기용'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은행과 증권사는 지난해 3월 ISA 출시에 앞서 다양한 경품 제공과 수수료를 절감해준다는 광고를 내세워 가입을 독려했으나 잔액 1만원 이하 소액계좌의 비중이 절반이 넘어 '깡통계좌'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 놓고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ISA 운용능력을 키워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비자들은 낮아진 수수료에 관심을 두기보다 금융시장의 대내외 조건에 따라 ISA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수익구조, 중도해지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